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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Green Grads Oct 22. 2021

미국 깡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Teaching Korean at Collis Miniversity

보통 캠퍼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구인공고를 찾아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콜리스 미니버시티 (Collis Miniversity)에서는 반대로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창조경제 아르바이트도 가능하다!


콜리스 미니버시티는 말 그대로 작은 (Mini) 대학 (University)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학생이 가르치고 학생이 배운다는 점! 다트머스 학생이라면 누구나 이 미니버시티의 강사가 될 수 있는데, 그 방법 또한 매우 단순하다. 자신이 가르치고 싶은 과목의 강의 계획서를 짜서 콜리스 학생회관에 제출하면 콜리스에서 학생 전체에게 홍보 블릿츠를 보내 수강생을 대신 모집해주고, 수강생이 충분히 모이면 나만의 강의가 개설되는 것이다! 시급도 강의 준비 시간 등을 감안해 시간당 $50 이상으로 꽤 높게 책정되어 있어,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나름의 꿀알바라고 할 수 있다. (단, 수강생이 충분히 모이지 않으면 강의가 개설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진짜 대학과 달리, 미니버시티에서는  학구적인 과목만 개설되는 것은 아니다. 각종 장르의 댄스 수업, 압화 공예, 뜨개질 비롯한 각종 공예 수업, 베이킹을 비롯한 각종 요리 수업 (인도 요리, 비건 요리, 케이준 요리 ) 물론, 믹솔로지 (Mixology) 수업이나 와인, 위스키 테이스팅 수업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흔히  법한 생활밀착형 취미 과목들이 제공되는데,   음식이나 술에 관한 수업들은 학업에 지친 학생들이 가볍게 들을  있어서인지 항상 인기가 많은 스테디셀러이다. 이런 흐름에 편승(?)  역시 한국, 일본, 중국 요리를 배울  있는 "아시아 요리" 과목을 개설하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수강생이 충분히 모이지 않아 개설되지 못했다.


내가 미니버시티에서 개설에 성공했던 과목은 다름아닌 한국어 (Korean Language)이다. 때는 아직 BTS와 오징어게임이 글로벌 시장을 뒤흔들기 10년쯤 전이었음은 물론, 강남 스타일이 히트하기도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트머스에는 의외로 "너 한국인이야? 나 한국 드라마 좋아하는데..!" 하며 수줍게 덕밍아웃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트머스에는 중국어학과나 일본어학과는 있지만 한국어학과가 없어서 이 친구들이 공식적으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루트가 없었다. 게다가 글로벌 한국어 교육 시장이 아직 크지 않던 시절이다보니 외국인 친구들이 따로 독학을 할만한 앱이나 인강도 마땅치 않았다. 나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어 한국어 수업 (Korean Language Class) 강의 계획서를 제출했는데, 생각보다 수요가 있었는지 콜리스 측에서 강의 개설이 확정되었다며 수업 시간과 강의실을 배정해주었다. 수업은 한 학기에 총 6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준비로 강사와 학생이 모두 바쁠 때 수업을 캔슬할 수 있도록 나름 현명하게 조율된 횟수였다.


(강사에 당당하게 들어가 있는 내 이름..!)


"와! 내가 살다살다 외국인들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는 날이 오다니!"

나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국어 수업을 하겠다고 강의 계획서를 제출했을 때만 해도 '내가 평생 한국어를 쓰고 살았는데 한국어 가르치는게 어려울 게 뭐가 있겠어...?'라는 다소 안일하고 오만한 마음이었는데, 막상 첫 수업을 앞두고 강의를 준비해보니 책임감이 막중했다. 돈을 받고 가르치는 건데 제대로 가르쳐야한다는 부담감, 수강생들이 앞으로 한국어에 계속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재밌고 유익한 강의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조금 오버일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마음까지 들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생각해보니 내가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공이 한국어 교육과나 국문학과도 아니고... 하다못해 남한테 한국어를 가르쳐 본 경험도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를 가르쳐본 경험은 많았다) 아무리 한학기에 단돈 30달러에 큰 기대 없이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이라고는 해도, 똑똑한 걸로 따지면 어디가서 안 빠지는 아이비리그 학생들 앞에서 한국어 강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니 갑자기 엄청난 무게감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랴부랴 아마존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나온 한국어 교본을 사서 보기도 했지만 6번의 강의 안에 소화하기엔 너무 본격적이고 어려웠고, 결국 나는 직접 교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직접 만든 강의 자료를 들고 미리 강의실에 도착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자니 익숙한 얼굴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내가 한국어 강의를 한다고 하니 고맙게도 일부러 수강신청을 해준 것이다. 전혀 모르는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할 줄 알았는데 익숙한 얼굴들이 섞여 있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학생들에게도 각자 자기소개와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줄 것을 부탁했다. 긴장이 조금 풀려서인지 제법 강사같은 느낌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첫 수업에서는 우선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웠는데, 한국어는 어려워도 한글은 워낙 배우기 쉬운 편이다보니 똑똑한 다트머스 학생들은 1시간도 안되어 금방 한글을 읽고 쓰게 되었다. 한글로 각자 이름을 소리나는대로 써보고, 다트머스도 써보고, 햄버거, 피자 등 영어 단어를 소리나는대로 써보며 한글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다보니 어느새 첫 수업이 끝났다. 친구들은 강의실을 나서며 "한글이 생각보다 쉽고 재밌더라!" "너 되게 열심히 준비했더라! 오늘 많이 배웠어!" 등의 긍정적 피드백과 함께 응원을 해주었는데, 그동안의 부담감이 말끔히 씻겨내려가며 굉장히 뿌듯했다.


날로 먹는 꿀알바일거라고 착각하고 강의를 개설했지만, 매 수업마다 교재를 직접 만들어가며 강의 준비를  했더니 은근히 많은 시간이 들어서 미니버시티 강사가 생각했던 것만큼 꿀알바는 아니었던 것 같다. (봄학기에는 겨울학기에 만들어둔 강의 자료를 바탕으로 약간의 보완을 거쳐 한번 더 같은 강의를 개설했으므로 그때는 조금 꿀알바였을지도...!)


비록 내가 기대했던 꿀알바는 아니었지만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서 내 언어와 내 문화를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은 나에게 왠지모를 소속감을 주었고, 대학 생활 이후로도 굉장히 오랫동안 행복한 기억으로 인상깊게 남았다. 특히 마이너하다고만 생각했던 한국 콘텐츠의 숨겨진 팬들을 발견하고, 한국어를 매개로 그들과 더 깊게 교류하게 된 것은 이후 내 대학원 생활과 커리어에까지 깊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요즘 해외에서는 한국 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어 공부가 인기라 전세계 세종학당에 대기자 명단까지 있을 정도라고 한다. 한때 반년동안 부족한 자원과 일천한 경험으로 어떻게든 한국어를 가르쳐보고자 노력했던 내 입장에선 너무나도 반갑고 자랑스러운 소식이다. 한국어의 인기에 힘입어 아이비리그 학교들도 하나둘씩 한국어 강의를 제공한다고 하는데, 한때 미니버시티에서 잠시나마 한국어를 가르쳤던 강사로서 다트머스에서도 어서 정식으로 한국어 강의가 열렸으면 좋겠다. (다트머스 ACLS 홈페이지에 따르면 향후 한국어를 제공할 계획은 있다고 한다...!)


Written by El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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