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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May 13. 2019

어떤 건 말하지 않는 게 좋다

시나리오 쓰기의 모든 것

미국 남성 듀오 홀 앤드 오츠 Hall & Oates의 앨범에 <어떤 건 말하지 않는 게 좋다 Some Things Are Better Left Unsaid>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시나리오 작가가 암기하면 유용할 경구이기도 하다.



  각 장면에 질감과 깊이를 부여해서 인물이 말하는 것과 달리 진짜로 원하는 것을 관객이 알게 만드는 일. 바로 작가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다. 인물은 무엇을 숨기려고 하는가? 서브텍스트 subtext(대사 속에 숨어 있는 감정, 믿음, 동기, 입 밖에 내지 못한 생각)는 무엇인가? 무엇을 말하려 들지 않는가?

  내가 첫 시나리오를 썼을 때 믿을 만한 친구 하나가 읽어보고는 서브텍스트에 대해 칭찬했다. 친구에게 고맙다고는 했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서브텍스트라고? 그게 뭔데? 내가 진짜 그걸 시나리오에 담았다고? 나는 어떤 서브텍스트를 덧붙일 의도가 없었다. 이야기는 인물이 끌어가고, 당연히 인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서브텍스트를 활용한 건 초짜 작가의 순전한 운이었을 뿐이라고 단정했다. 그럼에도 다른 시나리오들을 쓰는 동안 초기에는 필수적인 플롯과 사건에 초점을 두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브텍스트를 어디에, 어떻게 포함시킬지 의식하게 되었다. 내가 쓴 장면에 두 가지 이상의 색깔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 장면에는 사건이 늘 있기 마련이지만 때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그 이면에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속에 서브텍스트를 넣는 방식은 다양하다. 먼저 대사를 통해서 할 수 있다. 사람은 본심과 다른 말을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배경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인물들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들의 주변 환경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서브텍스트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인물은 자신의 진짜 속내를 드러내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이렇듯 한 장면은 세 가지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장면의 사건은 무엇인가? 둘째, 서브텍스트는 무엇인가? 셋째, 서브텍스트는 어떻게 이루어지며 구체화되는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핑크빛 연인 Pretty in Pink>에서 간단한 사례를 찾아보자. 영화에서 블레인이 앤디가 일하는 레코드 가게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의 사건은 블레인이 앤디에게 레코드를 사는 것이다. 여기서 서브텍스트는 블레인이 앤디를 좋아하고 데이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블레인이 앤디 곁에서 장난을 치고 싶어 한다. 앤디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혹은 그녀에 대해 더 많이 알기 위해. 이 장면의 후반부에 이르러 더키가 화재경보기를 울려(장면의 사건) 앤디와 블레인을 떼어놓는다. 이 장애물로 인해 블레인은 대화를 미처 끝내지 못하고 가게를 나선다. 이 두 사건에서 캐낼 서브텍스트는 더 많아진다. 블레인이 자리를 떠난 것은 확신이 없거나 앤디에게 향하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뜻인가? 블레인이 이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인가? 반면 이 장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확신하는 앤디는 의자에 단호히 앉아 주변을 뒤적인다. 이제 앤디는 긴급해 보이는, 자신의 보살핌이 즉시 필요한 어떤 일 때문에 자리를 떠난다. 이 행동은 그녀의 삶에 드리운 문제와 가까운 사람들의 곤경을 돕는 그녀의 역할을 상징하는가?


  서브텍스트를 시나리오에 심어 넣으려면 작가는 실생활에서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야 한다. 작가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잠시만 생각해보면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려 한다는 걸 알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자신을 제치고 고속 승진을 한다면, ‘저 자리는 내 거여야 했어! 질투가 나서 미칠 것 같아!’ 대신 ‘축하한다’라고 말하는 훈련을 받는다. 술에 취한 사람은 취하지 않은 척하려 애쓴다. 반년 동안 사귀던 사람과 헤어졌다면 눈물을 참거나, 우리 관계는 ‘어차피 잘되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하려고 애쓴다. 사실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랐고, 그래서 눈이 붓도록 펑펑 울 거면서도.

  삶이 그러하듯 영화나 드라마 속의 장면에도 사건이 있고 서브텍스트가 있다. 그리고 후자인 서브텍스트가 더 흥미로울 때가 있다.



시나리오 쓰기 실전 연습


  1. 한 시간, 하루, 한 주처럼 특정 시간을 정해놓고 사람들이 무언가 진짜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딴짓을 하거나 딴말을 하는 방식을 지켜보라.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숨기려 하는가? 부모님, 형제, 애인, 직장동료, 이웃, 친구, 식료품점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는 어떤 서브텍스트가 있을까? 현실에서 흥미로운 서브텍스트 사례 10개를 생각해보라.


  2.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모든 장면에서 사건과 서브텍스트를 찾아보라. 내가 앞에서 <핑크빛 연인>을 두고 한 것처럼 간단할 수도 있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 Vertigo>이나 밀로시 포르만 Miloš Forman의 <아마데우스 Amadeus> 같은 복잡한 영화라도 괜찮다. 하지만 잘 알고 있으며 서브텍스트가 명료한 영화로 시작하라. 서브텍스트를 공부하기에는 <보통 사람들 Ordinary People> 같은 영화가 좋다.


  3. 나는 개요, 인덱스카드, 칠판을 신뢰한다. 어떤 것을 사용하든 간에 이야기의 개요를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동안 모든 장면의 다층적 의미를 확실하게 파악해야 한다. 카드에 각 장면을 쓸 때에는 사건을 먼저 적어라. 그러고 나서 서브텍스트를 적어라. 세 번째로 이 서브텍스트를 전달할 방식을 선택하라(행동, 배경, 의상, 분위기 등). 이 모든 것이 의도한 서브텍스트, 즉 숨겨놓은 사건을 지탱할 수 있도록 배열되었는가? 이 부분을 말로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점이 이야기되는지 확인하라.



콜린 맥기니스 Colleen McGuinness
NBC 의학드라마 <머시 Mercy>, <미스 매치 Miss Match>, <노스 쇼어 하와이 North Shore>, <30 락 30 Rock>, <어바웃 어 보이 About a Boy>,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가 제작한 <온 더 랏 On the Lot> 등의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코미디 작가이자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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