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글쓰기 재능’이란 하나의 능력이 아니라 여러 능력의 집합이다. 말솜씨, 상상력, 스토리텔링 능력, 드라마(극적인 사건)와 이야기 구조 및 리듬에 대한 감각, 여기에다 아직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다른 능력까지 더해야만 나올 수 있는 재능이다. 대화문은 잘 이끌어가지만 시각적 묘사에는 약할 수 있다. 플롯을 짜는 기술은 부족하지만 서사적 감각이 뛰어날 수 있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이 지닌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작가가 갖춰야 하는 다양한 기술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은 대부분의 작가가 거치기 마련인 4단계 성장 과정에 대해 알아보자.
1단계 자기 자신을 위해 소설을 쓰며 본질적으로 백일몽을 풀어낸다. 즐거움을 얻기 위한 나르시시즘의 일종일 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소설을 쓰는 게 아니다(나는 적당한 나르시시즘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이도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저, 작가가 되고자 한다면 자아도취적 공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2단계 이제 껍데기를 부수고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전제로 소설을 쓰려 한다. 그러나 써내는 글들이 편집자들이 “변변찮다”고 말하는 수준에 그친다. 아직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쪽짜리 소설을 가지고 어떻게든 때워보려 하지만 출판사가 계속 퇴짜를 놓자 성공은 자신과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느낀다.
3단계 제대로 쓴 소설, 또는 무리 없는 수준의 모작을 써낸다. 그렇지만 기술적인 문제, 그중에서도 주로 구조와 인물에 발목이 잡혀 있다.
4단계 기술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 적어도 그럭저럭 해나갈 정도로 해결했다. 프로 작가 단계에 이른 것이다(4단계 이후도 존재하지만 4단계를 넘어선 작가는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뒤 뒤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보통 1단계를 건너뛰는 것 같다. 2단계마저 건너뛰는 사람도 있다. 이쯤 되면 30대 초반이 될 때까지는 소설 쓸 생각을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소설 쓰기 말고는 죽어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 이 단계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치는 수밖에 없다. 내가 겪은 것처럼 좌절을 맛보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4단계에 이를 때까지 거의 12년이 걸렸다. 누군가는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더 적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사람의 나이, 경험, 재능, 의지, 그리고 운에 달렸다 하겠다.
소설 쓰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구니 엮기에 비유해보면 어떨까? 단어로 엮은 바구니 말이다. 크거나 작을 수도, 단단하거나 느슨할 수도 있다. 처음 만든 바구니는 너무 작아 우리도 굳이 그 안에 많은 걸 담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점차 단단하고 큰 바구니를 만들게 된다. 그러다 결국 안에 든 것에 비해 너무 커져서 꼴사나운 모양새로 찌그러져 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바구니에 더 많은 것을 집어넣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나치게 많이 집어넣어서 바구니가 망가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가 마침내 바구니와 내용물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진다.
이제 우리는 이 상태에 이르게 해준, 마치 시소를 타는 것만 같았던 과정에 대해서는 깡그리 잊어버리지만 직감적으로 그 과정을 이용한다. 여느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무게와 힘을 견주어가며 바구니를 짠다. 그 바구니가 담아야 하는 내용물에 딱 맞는 크기가 될 때까지.
나는 열다섯 살 때 젊은 남자가 물질 복제기를 발명해서 자기 자신을 몇 차례나 복제하는 내용의 소설을 쓰려 했다. 똑같이 생긴 주인공 다섯 명이 멀거니 서서, 요컨대 “그래, 우리가 여기 있단 말이지”라는 말만 계속하는 첫 번째 장면을 썼다. 나는 주인공들을 몽땅 우주선에 태워 떠나보내 모험을 겪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고, 소설을 전혀 진전시킬 수 없었다. 이게 바로 1단계, 즉 나르시시즘 상태의 백일몽을 소설로 옮기는 전형적인 모습이다(나는 외동이라 당시 말동무가 갖고 싶었다).
수많은 실패를 겪으며 약 1년이 지난 후 드디어 소설 한 편을 완성했다. 보통 줄 간격에 타자로 종이 앞뒤를 꽉 채운, 두 쪽짜리 소설이었다. 시작은 화성인의 멸망이다. 화성인들은 그들의 정신을 인코딩해 둔 컴퓨터 같은 기기를 엄청 눈에 띄는 기념물 안에 남겨둔 채 멸망한다. 여기서 기념물은 덫이다. 훗날 화성에 온 우주 여행자들이 이 기념물을 조사할 수 있도록, 그 결과 죽은 화성인의 정신이 우주 여행자의 사고를 지배하게 되는 덫. 그러면 화성인은 새 삶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에 이르면, 화성인의 팔다리는 여섯 개인데 기념물을 발견한 지구인은 팔다리가 네 개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래서 화성인의 정신은 지구인의 몸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지구인은 변형된 채로 죽어 나뒹군다. 나는 이 결말이 대단히 풍자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자의적인, 말 그대로 ‘변변찮은’ 이야기였을 뿐인데도. 등장인물이 사람이 아니라 뒤바뀐 신체의 일부분에 불과한 데다 이야기에 발전도 갈등도 없다. 즉 중간 부분이 전혀 없고 시작과 결말만이 있다. 2단계에서 쓰는 소설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부류의 소설을 계속해서 썼고 열아홉, 스무 살 무렵에는 그중 일부를 출판사와 계약할 수 있었다. 하나는 제목이 〈정전 Blackout〉이었다. 우리가 보는 별들이 사실 전 우주적 도시의 가로등이었다는 진실이 밝혀지고, 이 전 우주적 도시가 우주보다 더 큰 존재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누구나 결말을 예상할 듯싶다. 후에 아서 C. 클라크가 〈90억 가지 신의 이름 The Nine Billion Names of God〉을 통해 대단히 훌륭하게 그려낸 것과 같은 세계를 표현해보려던 미숙한 시도였다.
열아홉 살에는 현미경으로 봐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진 후 여러 문제에 휘말리게 된 탐험가 무리가 주인공인 소설을 썼다. 자신들을 작게 만들어버린 과학자에게 도움을 호소하기 위해 보내는 메시지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출간하진 못했는데, 뭐 당연한 일이었다. 단편적 사건의 나열로 플롯이랄 게 없었고, 독창적인 내용도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 작품을 계기로 나는 소설 쓰기의 새 지평, 즉 3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초단편이 아니라 비교적 일반적인 길이의 소설이었던 것이다.
당시 내가 겪은 일들을 3단계에 있는 많은 초보 작가가 똑같이 겪는 모습을 가끔 본다. 조금 복잡한 플롯을 짜려고 애쓰다가 그게 어렵다는 걸 느끼고는 인물에게 쏟아야 할 노력을 끌어다 쓴다. 그 결과 플롯이 잘 짜이더라도(그것도 어쩌다 가끔) 소설 자체가 성공적일 수는 없다. 인물이 꼭두각시로 전락한 상태라 어떤 독자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4단계에 이르러 쓴 소설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내 첫 번째 작품은 1950년에 출간한 〈단 한 번의 총성 없이 Not with a Bang〉다. 결말에 트릭(등장인물 또는 독자를 속이는 장치, 정보)이 있는 플롯이었는데, 변변찮은 수준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 작품이었다. 내가 인물들을 이해하고 있었고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핵전쟁으로 인해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서 인간성이 사라졌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두 사람은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남자는 성격이 고약한 지체부자유자로,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데 말기에 이른 탓에 온몸이 마비되는 상황을 되풀이해 겪고 있다. 약을 가지고 있지만 마비 상태가 되면 스스로 투여할 수가 없다. 여자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전직 간호사로 감리교 신자였던 어린 시절로 퇴행한 상태다. 남자가 구애를 하지만 여자는 결혼을 선포해줄 목사가 모두 죽고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한참 후에 남자는 여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화장실에 갔다가 마비가 와서 쓰러지고 만다. 여자는 당연히 화장실 문을 열어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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