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내가 여태껏 만난 작가 지망생 대부분은 두 부류로 나눠진다. 말할 거리가 있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갈피를 잘 못 잡는 부류,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지만 말할 거리가 전혀 없는 부류.
미술을 공부할 때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실물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기계적인 과정이라 보고 그리는 건 정말 쉽게 배웠다. 누가 앞에 뭘 갖다놓든 정확한 비율로, 아주 자그마한 부분까지도 그대로 그려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기술을 특별하게 여겼던 적은 없다. 내 그림이 텅 비어 있다는 게 너무도 확실히 보였으니까. 아무런 의미도 담겨 있질 않으니 해석할 거리도 전혀 없었다.
만일 내가 미술을 업으로 삼았다면 끝내는 거기에서 소설 쓰기에서 찾아낸 것과 똑같은 것을 찾아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으로 단어들이 모인 집합이라 봤을 때, 소설은 뭔가를 담기 위해 만든 단단한 그릇이다. 신묘하게도 심상이나 감정처럼 실체가 없는 것을 포착해서 담을 수 있는 그릇.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5년쯤 지나자 나는 소설의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수년 동안, 나도 모르게, 그 당시 내게 중요했고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강렬했던 특정 순간들을 기억 속에 차곡차곡 저장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내 기억력은 형편없는 편이다(날짜도 까먹고, 요일도 까먹고, 옛 주소도 까먹고, 사람들 이름도 까먹는다. 인생의 어떤 부분들은 아예 새하얗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몇몇 순간만은 지금도 선명하고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떤 것들은 벌써 40년도 더 지난 일인데도 말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내 무의식은 그 순간들을 여전히 충격과 자극으로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소설에 담아내고 싶어 하는 본질들은 바로 그런 순간들에 담겨 있는 것 같다.
그중 한 가지 기억은 예전에 일했던 사무실의 경리 직원과 연관되어 있다. 40대 후반으로 늘 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월급을 받으러 갈 때마다 자신의 책상에 월급봉투를 탁 던지며 우리를 노려보았다. 한마디로 사무실 분위기를 해치는 암적인 존재였다. 그러다 어느 날 오후 처음으로 그 직원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는데, 그녀가 어떤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전까지는 그녀가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그녀도 그녀의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엑스트라가 아니라. 몇 년이 흐른 뒤 왜 그녀가 사무실에서 웃지 않았는지, 왜 두 개의 삶을 살았는지 서서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반에 뇌전증을 앓는 남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발작을 일으켜 책상 옆에 쓰러지더니 경련을 하며 팔다리가 뻣뻣해지는 것을 보았다. 혀를 깨물고 피를 흘리기도 했다. 당시 나는 그 발작을 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년 후 〈친절한 이들의 나라 The Country of the Kind〉라는 단편소설을 쓰면서 그때의 기억을 이용했던 것이다(이 작품은 사형제도가 사라진 미래에 사는 한 살인자 이야기로, 사람들이 그를 제재하는 수단으로 뇌전증 발작이 나온다).
나는 《미래인들 The Futurians》을 쓰기 위해 오랜 친구들을 인터뷰하다가 조그마한 기억 파편들(나는 ‘스냅사진’이라고 부른다)이 나처럼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평범한 인간의 기억은 대여섯 가지 종류로 나뉜다. 그러니 조그맣고 강렬한 기억 파편들이 없다고 해도, 분명 다른 종류의 의미 있는 기억이 자신에게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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