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의식적이든 아니든, 누구나 소설을 쓰려면 첫 문단을 쓰기에 앞서 네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점, 시점, 인칭(1인칭, 2인칭, 3인칭), 그리고 시제.
□ 첫 번째 선택_시작점
도입부를 쓰는 일은 다른 부분을 쓰는 것보다 중요하고 까다롭다 할 수 있다. 다른 모든 부분은 앞부분에 기댈 수 있는 반면, 도입부는 오롯이 자력으로 곧추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입부에는 소설의 인물, 장소, 상황, 분위기와 어조 등도 확실히 드러나야 한다. 도입부는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호기심을 자아내며, 갈등을 암시하고, 플롯을 처음으로 진전시켜야 하며, 이 모든 것이 첫 쪽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어디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적절할까? 보통은 첫 번째 주요 사건이 발생하기 전, 단 너무 앞선 때여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아주 직전도 아닌, 그런 순간이 적절하다. 주인공의 유년시절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주인공이 가지고 놀았던 모든 장난감, 좋아했던 선생님, 홍역과 볼거리와 백일홍에 걸렸던 일을 줄줄이 쓴다면 독자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책장을 덮어버릴 것이다. 작가가 진짜 들려주려고 하는 러브스토리, 스파이 이야기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말이다.
반면 이제 막 책을 펼친 독자를 무리하게 인물들 행위 속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면, 이때도 이유는 다르지만 마찬가지의 결과가 일어난다. 작가가 독자를 잃을 위험을 구태여 떠안는 거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독자로서는 완전히 낯선 인물에게 그다지 흥미를 깊게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물들이 서로를 미친 듯이 헐뜯고 있다고 해도.
첫 번째 주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특히 그 사건이 주인공의 돌출 행동과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더 앞에서 시작되어야 하는데, 그래야 주인공이 보통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려줌으로써 일종의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준점이 없으면 압박감 속에서 인물이 취하는 행동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 독자가 곤란해할 수밖에 없다.
도입부에서 독자의 관심을 최대한 빨리 붙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내러티브 훅 narrative hook’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시선을 뗄 수 없는 첫 문장으로 독자가 글을 계속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을 일컫는다.
“저거 봐!” 내가 소리쳤다. “천장을 뚫고 나온다!”
“저거 봐”라는 말에 우리는 자동적으로 주목하게 된다.
독자가 떠나가지 않도록 확실히 붙잡아 두기 위해서 내러티브 훅 다음에 주의를 끄는 문장 몇 개를 추가로 더 집어넣을 수도 있다.
그녀가 옷을 입긴 입고 있었는데, 옷이란 게 우표 하나가 봉투를 가리는 정도밖에 그녀를 가리고 있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나는 내러티브 훅을 좋아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소설 도입부에서 작가가 내 옷깃을 붙잡으려 애쓴다는 게 느껴지면 그가 나 말고 다른 독자를 움켜잡길 바라며 줄행랑을 쳐버리게 된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있다면 그냥 말을 함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붙잡아도 될 것 같다. 나는 나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안내하는 도입부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식으로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 문장을 주목을 끄는 도구로 이용하고자 한다면 그 문장에는 어떤 정보가 담겨 있어야 한다(위 첫 번째 예문을 보면 ‘뭔가’가 천장을 뚫고 나오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면 우리는 이다음 문장들 이 더욱 많은 정보를 알려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정보가 진짜로 더 나오면, 더불어 상황이 계속해서 흥미진진하다면,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이 소설을 읽게 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시작하든 지금부터 쓰려는 소설이 어떤 ‘종류’의 소설인지 독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첫 단락은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의 처음 한 입과 똑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찾을 때까지 문학잡지나 단편집을 첫 단락만 맛보며 훑어보는 사람이 많다. 액션, 모험을 다루는 작품이라면 첫 단락에서 그 점이 드러나야 한다. 인간의 성격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를 다룬다면 마찬가지로 그 사실이 첫 단락에 드러나 있어야 한다.
어쨌든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지금 도입부를 쓰는 데 어떤 문제를 겪고 있든 간에 그에 가장 걸맞은 해결책을 발견하게 되어 있다(도입부는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버리고 다시 써라). 도입부는 소설 전체 길이에 줄잡아 비례하는 것이 좋다. 짧은 단편소설에서는 첫 번째 주요 사건이 처음 두세 쪽을 넘기기 전에 발생해야 한다. 다소 긴 중편소설에서는 어느 정도 늦춰져도 괜찮다. 그렇지만 극적인 사건과 긴장은 어느 경우라도 첫 쪽 안에 암시되어야 한다.
미스터리가 스토리텔링의 정수이기는 하지만, 의미도 없이 이상야릇하게 만든 이야기는 독자에게 골칫거리가 될 뿐이다(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발음하기조차 어렵게 지어버리면? 독자가 5쪽에 가서야 이 인물이 남성이란 것을 알게 된다면 그건 어느 정도 이 이름 탓일 수밖에 없다. 또는 주인공이 밑바닥 생활을 하는 부랑아인데 시종일관 달라이 라마로 불린다면? 그는 정말 부랑아로 변장한 달라이 라마인가 아니면 그냥 스스로 달라이 라마라고 믿는 부랑아인가? 작가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독자는 절대 알 수 없다).
자신이 쓴 소설의 첫 쪽을 펼쳐, 그 자체로는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데도 별다른 설명 없이 집어넣은 용어나 내용이 없는지 찬찬히 뜯어보자. 그런 부분은 하나만 있어도 너무 많은 것이다. 만약 대여섯 개 나온다면 난리가 난 상황이다. 생소한 인물과 장소로 독자를 압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집주인이 손님을 정중히 대접하며 한 번에 한두 사람만 소개하듯이 그렇게 독자를 대하자.
말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가 눈에 띄게 드러나 있지 않은 한 인용부호로 말을 전하며 도입부를 시작하지 말길. 그리고 대화문 첫 줄에 앞서 묘사나 설명을 하는 문장 한두 개를 두고 시작하는 편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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