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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Mar 04. 2019

첫 문단 쓰기 전 4가지 선택 2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 두 번째 선택_시점


  초보 작가 중에는 특히 시점을 어려워하는 이가 많다. 시점은 비교적 근래에 고안된 것이라 아직 우리 몸속에 깊이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시점은 오직 하나, 바로 이야기하는 사람의 시점뿐이었다. 어떤 이야기꾼도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아는 척하지 않았다. 신들이 뭘 하는지 거리낌 없이 전하고, 인물의 행위를 두고 이유를 설명하기도 하고, 마음껏 그들을 찬양하거나 비난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언제나 ‘일어난 일’ 즉 인물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했는가에 머물러 있었다.
  책이 인쇄되어 값싸게 보급되기 시작하자 이야기꾼들은 자신들이 점하고 있던 확실한 우위는 잃었지만 대신 다른 것을 얻었다.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청자 앞에 나설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목소리의 힘과 하프의 리듬은 잃게 되었지만, 이제 내키는 대로 변장하고 척을 할 수 있었고 마음대로 이야기 앞에 나서거나 뒤로 물러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자신을 안 보이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책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구전과 비슷한 모양새로 유지되었다. 심지어 작가가 대담하게 인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간략히 드러낼 때라도 이야기는 여전히 이야기꾼(화자)이 말하는 형태였고, 거기엔 다른 시점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셀마 라겔뢰프의 〈크리스마스 손님 A Christmas Guest〉이 그 예다. 이 소설은 은퇴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야기로, 그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원치 않는 손님을 쫓아내고는 깊이 후회한다. 그때 그 손님이 돌아온다.

  릴제크로나는 위층 자기 방에서 격렬하게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기 때문에 루스터가 온 줄 몰랐다. 루스터는 그동안 릴제크로나의 부인, 아이들과 함께 식당에 앉아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으레 식탁 근처에 함께 있곤 했던 하인들은 여주인이 처해 있는 곤란한 상황을 피해 부엌으로 가 있었다.

  여기 이 한 단락 안에서 우리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자신의 방에 있고 손님과 부인, 아이들은 식당에 있으며 하인들은 부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약 작가가 지하실에 있는 청소부나 다락방에 있는 고양이도 집어넣고 싶었다면 그 내용들도 여기 함께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는 방법은 정말 놀라울 만큼 경제적이긴 하지만 한마디로 장황하다. 일련의 내용을 하나로 묶어주는 장치라고는 서사 그 자체밖에 없으며, 이 말은 보통 소설이 상당히 단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복잡한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들은 다른 시점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더욱 한정적이고 날카로운 시점을 말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작가가 모든 인물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다. ‘제한된 전지적 작가 시점’은 작가가 인물 단 한 명의 마음속에만 들어갈 수 있다. ‘작가 관찰자 시점’은 작가가 어떤 인물의 마음속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수 인물 시점’은 인물 한 명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 전체가 전개된다.
  지금부터 마치 어떤 소설은 이 시점만으로, 또 다른 소설을 저 시점만으로 쓰여 있기라도 하듯 다양한 시점을 따로따로 논의함으로써 서로 구분을 해볼 텐데 실제 소설은 늘 이렇게 하나의 시점만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당부해둔다.



전지적 작가 시점
  전지적 작가는 과거 이야기꾼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내용을 압축하고 간추릴 수 있으며 인물들 사이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한다. 주인공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한편,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상당히 객관적으로, 심지어 흥미롭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기도 한다.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마음속에 살며시 들어가 있는 그대로 그들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때 그 내용은 주인공이 그들을 바라보는 내용과 다를 수도 있다.

  취침 시간이 가까웠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면 땅이 시야에 들어와 있을 터였다. 의사 맥페일은 담배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난간에 기댔다. 그러곤 하늘을 쳐다보며 남십자자리를 찾았다. 최전방에서 2년을 보낸 후였고, 원래라면 벌써 나았어야 하는 상처가 있기 때문에 맥페일은 적어도 열두 달은 아피아에 정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게다가 여행 덕분에 벌써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튿날 파고파고에 당도하면 배에서 내릴 승객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날 밤 춤추며 놀고 있었고, 그 덕분에 기계식 피아노의 거슬리는 음률이 맥페일의 귀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갑판은 이내 조용해졌다. 맥페일은 조금 떨어진 데서 자신의 아내가 긴 의자에 앉아 데이비슨 부부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맥페일이 불빛 아래 앉아 모자를 벗자, 아주 붉은 머리칼, 벗어진 정수리가 드러났다. 벌겋고 주근깨 있는 피부가 붉은 머리칼과 어울렸다. 그는 마흔 정도에 몸은 말랐으며 얼굴은 파리했고, 꼼꼼하다고 할까, 지나치게 아는 티를 내는 면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말했고,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 윌리엄 서머싯 몸, 〈비〉

  이 소설은 의사 맥페일에서 전지적 작가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누구의 시점에서 쓰더라도 상관없었을 법한 일반적 서술로 시작한다. 다섯 번째 문장에서 시점은 맥페일의 마음속으로 슬며시 들어간다(“여행 덕분에 벌써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맥페일이 자신의 아내에게 다가가자, 시점은 맥페일을 바깥에서 살피기 위해 약간 뒤로 물러난다(“아주 붉은 머리칼, 벗어진 정수리……”). 이렇게 시점이 계속 움직인다.
  이야기가 진행되어가면서 시점은 맥페일의 마음속으로 자주 되돌아오는데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다. 또한 다른 모든 주요 인물의 마음속에도 들어간다. 단, 데이비슨의 마음속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시점이 빙빙 돌아다니며 움직이는 사이에 독자는 선교사 데이비슨과 매춘부 톰슨 간의 감춰진 다툼에 주목하게 된다. 만약 맥페일의 시점에서만 서술되었다면 맥페일이 어색하게 튀었을 것이다.
  이렇듯 전지적 작가 시점은 인물들 사이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유쾌하고 우아하게 춤추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신이 내려다보듯 독자가 반쯤 떨어진 위치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이야기에 관여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인물 저 인물의 머릿속을 쉬지 않고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독자는 어느 한 인물 속에 갇혀 있다고 느낄 새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전지적 작가 시점은 대개 단수 인물 시점이나 복수 인물 시점만큼 긴장감을 끌어올릴 수가 없다(따라서 긴장감을 최대한 고조시켜야 하는 공포소설을 쓴다면 전지적 작가 시점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차분하다. 천천히 움직이며, 관조적이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장르소설에서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제한된 전지적 작가 시점
  서로 모순된 단어들의 조합처럼 보이는(실제로 모순이다) ‘제한된 전지적 작가 시점’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되 오직 한 인물의 마음속에만 들어갈 수 있는 시점을 일컫는다(앞서 살핀 서머싯 몸의 〈비〉에서 작가가 맥페일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게 바로 제한된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이 시점은 한 사람 이외의 마음속은 들여다보고 싶지 않을 때 유용하다. 하지만 보통은 주인공을 안팎에서 모두 그려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처음 한두 단락을 이 시점으로 쓰고 나면 아마 이 시점을 통해 이루려던 목표를 모두 달성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눈에 안 띄게 조용히 단수 인물 시점으로 옮겨가 뒷부분은 이 바뀐 시점으로 계속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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