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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Mar 07. 2019

첫 문단 쓰기 전 4가지 선택 5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 세 번째 선택_인칭


  ‘인칭’이란 소설의 주인공이 ‘나’(1인칭), ‘너’(2인칭), ‘그’ 또는 ‘그녀’(3인칭) 중 어떻게 호칭되는가 하는 사항을 가리킨다. 3인칭에서만 주인공의 성별이 대명사에 의해 분명해진다는 점을 주목하자. 1인칭, 2인칭일 때는 성별을 알리고 싶으면 다른 방식으로 밝혀야 한다.


  1인칭은 가장 친밀하고 직접적인 인칭이며, 많은 작가가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초보 작가들은 1인칭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무의식중에 1인칭이 인물 창작을 쉽게 해준다고 생각해서 1인칭을 고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

  시점인물의 겉모습을 무슨 수로 묘사할 것인가? 거울을 보게 만들어서? 어쩌다가 받아들여질 수는 있어도 그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시점인물의 본성을 어떻게 독자에게 알려줄 것인가? 그 인물이 자신을 어떻게 봐주길 원하는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이 모든 정보는 3인칭으로 쓸 경우 요란하지 않게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1인칭으로 쓰면 에둘러 전할 수밖에 없다.
  1인칭에서는 소설 속의 ‘나’와 작가 자신으로서의 ‘나’를 구분하는 문제 또한 초보 작가들을 지독히 괴롭힌다. 그리고 이로써 새로운 문제가 줄줄이 탄생한다. 30대 이전에는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도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 굉장히 어려워하는데, 이러한 경향을 1인칭 인물에게 그대로 옮긴다고 해보자. 얻을 수 있는 게 자만에 빠진 위선자밖에 더 있을까? 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초보 작가들은 자기비하, 자기혐오에만 미친 듯이 몰두하는 인물들을 만들어낼 게 뻔하다.
  끝으로, 1인칭 인물은 소설의 작자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 세 번째 문제가 나타난다. 왜 독자는 이 인물을 작자라고 믿어야 할까?(만약 믿을 수 없다면 독자는 어떻게 행간의 의미를 읽어 인물이 진짜 어떤 사람이고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진실로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상황일 때는 1인칭으로 쓰는 게 가장 좋다.


  ○ 화자가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게 만들고 싶을 때
  《모비딕 Moby Dick》을 보자(“날 이스마엘이라고 부르게”).


  ○ 소설에 회고록 같은 분위기를 더하고 싶을 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 Treasure Island》을 참고하자.


  ○ 화자가 진실을 일부 숨기거나 심지어 거짓을 말하게 만들고 싶을 때
  포드 매독스 포드의 《훌륭한 군인 The Good Soldier》이 그 예다. 이 소설에서 화자는 “내 사랑하는 플로렌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다가 100쪽쯤 이르자 “나는 플로렌스가 밉다”라며 말을 바꾼다(1인칭 화자는 거짓말을 해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3인칭 화자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결국 작가이기 때문에 독자의 분노를 산다. 한편 1인칭 화자가 거짓말을 하거나 진실을 숨길 경우 끝내 독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습관적으로 1인칭을 쓴다면 자신이 쓴 소설 한 편을 골라 3인칭 소설로 바꾸어보자. 해봤더니 인물이 사라질 것 같다면? 인물을 창조하지 않고 1인칭에 의존했다는 증거다.
  1인칭 소설들은 거의 표준어로 쓰여 있으며, 문자로 된 기록과 말로써 발화되는 이야기 사이를 서성이는 모양새를 띤다(이쪽 또는 저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져 있는 소설도 가끔 있기는 있다). 주인공의 말투가 거칠거나 사투리를 쓸 경우 소설을 표준어로 전달하는 방법은 3인칭으로 서술하는 것뿐이다.
  2인칭 서술 방식으로 진행할 경우 주인공은 ‘나, 그, 그녀’가 아니라 ‘너’로 지칭된다. “너는 17살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난 너는 방문 앞에서 부모님이 남겨둔 편지를 발견했다” 등등.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2인칭 서술 방식은 다소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실상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한 가지 이점이 있긴 한데 바로 ‘그’나 ‘그녀’보다 ‘너’라는 단어를 쓰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의 존재가 더욱 강력히 부각되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의 시점으로 두 개의 시점을 얻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 네 번째 선택_시제


  ‘시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난 시점 즉 과거, 현재, 또는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동사가 변화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대다수의 글은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산문이든 시든 과거시제로 쓰여 있다. 정말이다. 비록 지금 이 단락은 현재시제로 쓰여 있지만,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친구에게 이야기할 때 자연스레 현재시제로 빠져들지만 말이다. “내가 어제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정신없이 그냥 막 걸어가고 있는데, 그 미친놈이 나한테 오더니…….” 이처럼 현재시제는 이야기를 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을 미미하게나마 아끼게 해준다. 현재시제 동사는 발음하기도 조금 더 쉬우니까. 하지만 글로 쓸 때는 이런 이점이 따르지 않는다.
  반드시 현재시제로 서사되어야 하거나 현재시제로 쓰는 게 더 나은 이야기가 종종 있다. 즉시성이나 무시간성 효과가 필요한 경우, 또는 말미에 세상이 끝장난다는 플롯을 취하고 있는 경우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2인칭 서술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관찰자의 존재는 3인칭 과거시제보다 3인칭 현재시제에서 조금 더 강하게 존재한다. “마틴은 집과 울타리 사이로 나 있는 자갈길을 걸어간다. 그는 우편함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고, 다시 닫는다.” 여기서 독자는 마틴의 머릿속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마틴을 보는 듯하다. 과거시제라면 마틴의 머릿속에 독자가 있을 공산이 크다(“마틴은 자갈길을 걸어갔다……” ).


  다음 사항을 명심하길 바란다. 과거시제로 소설을 쓸 때(“제인은 길을 걸어갔다”), 그 과거시제 동사는 소설 속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보다 전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려면 무조건 과거완료시제(과거시제에 보조어간 ‘-었-’을 더한 형태)를 써야 한다(“제인은 길을 걸어갔다. 어제 사고를 ‘목격했었던’ 길이다”).
  글을 쓰다 보면 소설 속 시간보다 앞선 때에 일어난 일을 묘사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 내용이 너무 길어서 전부 과거완료시제로 서술하기에는 어색할 때가 흔히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한두 문장을 과거완료시제로 시작한 후 드러나지 않게 살짝 과거시제로 옮겨가도 괜찮다.

  그는 30분 정도 기다렸었다. 추위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줄담배를 피우며. 마침내 그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미안해, 늦었어.’ 그녀가 말했다.

  이렇게 계속 이어나간다. 이 부분의 나머지 문장은 전부 과거시제지만 대다수 독자는 눈치 채지 못한다. 작가와 독자는 언제나 현재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과거시제로 내내 흘러가다가 갑자기 현재시제로 된 서술이 튀어나오면 독자는 그 부분을 인물의 말이나 생각이 아닌 작가의 논평으로 간주한다(이런 논평을 ‘작가 개입’이라고 부른다).

  샐리는 완두콩을 창가로 가지고 가서 껍질을 벗겼다. 말 상대가 없어서 해가 길다.

  작가는 샐리의 생각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두 번째 문장을 넣었겠지만 독자로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과거시제로 썼으면 샐리의 생각이라는 점이 확실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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