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과의 인연에 감사를 드립니다.
복되고 의미 있는 만남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중략...
○○○ 작가 드림.
며칠 전 받은 작가님의 답장이다.
우연한 기회에 좋은 분과의 인연으로 작가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의 진로 글쓰기를 위한 강의도 한다.
8주간 작가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강의 감상문과 내주는 과제를 해야 한다.
마지막 주차에는 자신의 ‘미래 자서전’을 써보는 과정이다.
월요일 과제는 강의 감상문이었다.
작가님의 메일로 보내는 것이었다.
보낸 글에 대해 작가님이 피드백을 준다고 했다.
작가님의 편지를 여는 순간 창피했다.
피드백이 부끄러웠던 것이 아니라 작가님의 편지 서두를 보는 순간 내가 지금 이 정도밖에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작가님께 감상문과 함께 간단한 메일을 썼다.
감상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몇 글자 적어 보냈다.
그런데 나는 엉망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모두 날아가 버리고 ‘우다다다’ 생각만 적어 보냈다.
어릴 때부터 배웠던 편지글의 형식, 부르는 말, 첫인사, 본문, 끝인사, 보낸 사람 등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간단히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적고 끝인사로 마무리했다.
손편지를 쓴 지 오래되어서인지 메일을 쓸 때 언제부터인지 형식은 없어졌다.
물론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손편지로 보낼 때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수십 권의 책을 내신 유명한 작가도 저렇게 겸손하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데 나는 무엇을 했지?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간단한 글을 쓰더라도 사색하고 언어를 골라 쓰는 것이다.
마치 사골 뼈를 뽀얀 국물이 나오도록 하루종일 끓이듯이 글도 가슴속에서 생각하며 다듬어야 한다.
글을 쓰는 흉내를 내면서 아직도 기본을 모른다는 생각에 작가님에게 보낸 편지가 시간이 갈수록 더 민망해졌다.
사골국처럼 깊고 진한 맛의 글을 쓰려면, 아직 나에게는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할 것 같다.
다음 시간 작가님을 뵐 생각을 하면 부끄럽다.
하지만 이런 마음도 나에게는 소중한 배움의 순간이다.
#부끄러움은내몫 #곰삭여야하는데 #생각은어디로가버린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