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였던 시간들이 만든 새로운 케이크

by 한미숙 hanaya

겨우 잠든 아이를 자리에 눕혔다.

까치발을 하고 조용히 걸어 나왔다. 마치 누군가에 들키면 나의 모든 작전을 망치는 것처럼.

방문을 살그머니 열고 나왔다.

방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질 때까지도 나는 까치발로 걸었다.

그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또 다른 직장으로 나는 출근했다.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잠들면 주부들은 또 다른 일터로 출근한다.

아이의 이유식을 또는 아이의 우유병을 닦고 삶아 미리 준비해 놓는다.

끝날 줄 모르는 육아는 가끔 나를 블랙홀로 밀어 넣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잊어버렸다.

내가 좋아했던 음식도, 좋아하는 노래가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차 안에서는 늘 동요가 흘러나왔다.

책은 그림책으로 시작해서 그림책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새벽부터 아이에게 읽어주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반복되는 책 읽기에 가끔은 짜증이 밀려오기도 했다.

달콤하고 화려한 장식을 가진 케이크와 같았던 나의 삶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접시 위에 남은 케이크 부스러기 같았다.

누군가 먹어치우고 남은 케이크 부스러기 같은 인생에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했다.

아이를 사랑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일에 서서히 지쳐 갈 때쯤 아이는 성장해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배움을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잠깐씩 주어진 그 시간에 나는 배움을 향해 달려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그렇게 시간의 부스러기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작은 꿈을 찾아 주는 강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속에서 나도 조금씩 같이 성장했다.

육아의 긴 터널은 진통의 세월이기도 했지만,

나에게 주어진 작은 시간에 감사함을 알게 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엄마, 강사로 많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작은 부스러기 같았던 나의 시간을 모아 나는 다시 또 다른 케이크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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