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 말을 나는 자주 사용한다.
사람에게는 5감이 있다.
미각, 청각, 시각, 촉각, 후각이다.
이 중 내가 가장 약한 감각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청각이다.
아빠가 귀가 어두운 편이었다.
할아버지도 어두웠으므로 유전적 요인도 있을 것이다.
아빠에게는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아빠는 대학에서 설계를 전공했다.
퇴임 전까지 부대에서 활주로를 설계하고 보수하는 일을 감독했다.
물론 매일 활주로에 나가지는 않고 사무실에서 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활주로에 나가 비행기 소리를 가까이서 들었다.
아빠는 집에서 TV를 보실 때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크게 틀어놓았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다른 집보다 조금 큰 소리를 듣고 자랐다.
아빠의 연세가 들수록 TV 소리는 같이 커졌다.
가끔은 TV 소리로 인해 가족들이 대화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이웃집에서 보면 싸우는 것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보청기를 해드렸어도 잘 끼지 않으셨다. 말소리보다 다른 소리가 더 크게 들려 불편하다고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 역시 귀가 약하다.
신랑은 나에게 지금부터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면 나이가 들어 어떡하냐고 가끔 핀잔을 주기도 한다.
신랑과 함께 TV를 볼 때면 신랑에게 볼륨을 맞춘다.
나는 자막으로 내용을 이해한다.
나에게 소리를 맞추면 신랑은 시끄럽다고 하기 때문이다.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니 가끔 강의할 때도 엉뚱한 대답을 한다.
아이가 이야기를 하면 잘못 알아들을 때도 있다.
다시 묻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대강 넘기기도 한다.
내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코로나 시절이었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으니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똑똑하고 큰 목소리로 하는 이야기도 마스크 속에서는 ‘웅얼거림’처럼 들리기도 한다.
입 모양을 보고 알아채기도 했지만, 코로나 시절은 그것도 불가했다.
또한, 잘못 알아듣기에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 있다.
작은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내가 필요한 내용이 아니면 별로 집중하지 않는다.
속삭이듯 말하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느라 나의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행동으로 가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어찌하지 못할 장벽 때문에 좌절하지는 않는다.
잘 들리지 않을 때는 솔직히 말하고, 중요한 대화에 에너지를 집중한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내가 청각에 약하듯이 누군가에게도 또 다른 약한 점이 있다.
그 약점을 흉보기보다 서로가 이해하고 보완하면서 함께 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지만, 함께 하면 완벽해질 수 있다.
하나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이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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