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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필요한 나이

by 한미숙 hanaya

오랜만에 신랑이 좋아하는 연근조림을 했다. 연근조림은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이다. 연근을 사다가 깨끗이 씻고, 껍질은 제거한다. 나만의 비법으로, 펄펄 끓는 물에 연근, 소금과 식초를 넣고 한 번 삶아낸다. 이렇게 하면 연근 특유의 맛과 끈적거림이 약간 제거된다. 삶아낸 연근은 체에 받혀 물기를 빼고, 연근을 조릴 양념장을 만들어 끓이기 시작한다. 양념한 물이 끓기 시작하면 연근을 같이 넣고 조린다.


연근조림은 인내의 요리다. 연근과 비슷한 양의 물이 거의 졸아 들 때까지 불을 조절하면서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 바쁜 일정 중에는 이런 시간을 내기 어려워 종종 반찬가게에서 미리 만들어진 연근 반찬을 사다 준다. 하지만 오늘처럼 시간이 허락할 때는 정성을 다해 만드는 재미가 있다.


연근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연근의 아삭함을 좋아한다. 그 독특한 식감과 구멍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이 매력적이다. 신랑이 연근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도 이런 독특한 매력 때문일까? 그런데 재미있게도 신랑은 연근과 달리 술렁술렁한 스타일은 아니다. 만약 그가 좋아하는 연근처럼 여유롭고 틈새가 있는 성격이라면 인생이 조금 더 수월할 텐데 말이다.


나는 어떤가? 나 역시도 어떤 면에서는 빽빽하게 채워진 사람이다. 때로는 융통성 없이 꽉 막힌 사람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타인의 경직된 모습을 보며 '꼰대'라고 비난하면서도,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면 나 역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연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구멍들로 가득 차 있는. 그 구멍들은 우리의 부족함이자, 동시에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그 구멍이 주는 매력을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 빼곡한 일상 속에서, 연근처럼 여유와 틈새를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아삭한 연근처럼, 단단하면서도 적당한 빈틈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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