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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친구, 백 팩과의 하루

by 한미숙 hanaya


아직 캄캄한 방에 불을 켜고 들어선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내 얼굴을 스친다. 아침 일찍 강의를 나가기 위해 씻으러 들어오는 나를 그것이 조용히 지켜본다. 가장 큰 입을 벌리고 의자 위에서 어젯밤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검은 백 팩. 그의 침묵은 말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나를 쳐다보며 언제 자신을 채워줄 것인지 묻는 듯하다. 그 깊고 어두운 공간은 나의 하루를 담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아침 일찍 강의를 나가는 날은 하루 전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충전을 시킨다. 노트북의 작은 불빛이 방 한구석을 밝히면, 백 팩은 마치 자신의 일부를 잠시 내어준 것처럼 조금은 허전해 보인다. 나갈 준비를 모두 마친 후에 마지막 순간에 노트북을 정리해서 백 팩에 넣고 벌어진 입을 닫는다. 지퍼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지면, 그제서야 가방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짓는다. 우리의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강의 나갈 때 언제나 나를 든든히 지원해주는 백 팩이다. 요즘은 전자 칠판을 쓰는 학교들이 점점 많아진다. usb만 들고 가도 되는 학교도 있지만,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 노트북 없이 강의 나갔다가 학교 노트북을 빌린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usb만 가지고 오라는 안내를 받아도 언제나 들고 다닌다.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전자 칠판이 있다는 학교의 말만 믿고 노트북 없이 강의를 나섰던 날, 내 안에서 일어났던 당혹감과 불안함. 낯선 노트북에서 깨져 보이는 글씨 폰트를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그 순간. 그 후로 백 팩과 나는 '혹시 모르니, 늘 함께하자'고 단단한 약속을 맺었다.

작년에 새로 만난 검은색 백 팩은 처음엔 그 반짝이는 지퍼와 단단한 질감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주머니마다 나만의 체계가 생겼다. 메인 포켓에는 언제나 노트북이, 앞 주머니에는 필기구와 메모장과 강사 목걸이가, 뒤에 있는 작은 주머니에는 핸드크림과 립밤과 차 키가 들어있다.


아침마다 백 팩은 나의 하루를 함께하는 동반자가 된다. 강의를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백 팩 역시 하루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 듯 어깨에 묵직하게 느껴진다.


밤이 깊어갈 때, 나는 다음 날 강의를 위해 자료를 준비한다. 이미지를 수정하고, 워크시트를 만들고, 발표 자료를 다듬는다. 컴퓨터 화면 불빛이 어둠 속에서 유일한 빛이 될 때, 백 팩은 의자 위에서 조용히 나를 지켜본다. 그것은 마치 말하는 듯하다. '내일도 우리는 함께야.‘


아침이 오면, 우리의 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백 팩 안에 오늘의 모든 것을 담고, 지퍼를 닫는 순간 나와 백 팩은 하나가 된다. 어깨에 메는 그 무게는 부담이 아닌 안정감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있기에 나는 걱정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캄캄한 새벽, 불을 켜고 들어선 방에서 나와 백 팩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말없는 동반자이지만, 때로는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 오늘도 나의 백 팩은 벌어진 입을 통해 나의 하루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사물에세이 #든든한동반자백팩 #내일도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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