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좀 그만해!”
매일 반복되는 나의 첫마디다.
“공부는 언제 하려고? 제발 잠 좀 일찍 자고.”
“내가 알아서 해. 걱정하지 마.”
딸의 대답은 늘 똑같다.
“어떻게 걱정이 안 돼. 엄마 눈에는 공부하는 건 안 보이는데. 내일부터는 아침에 안 깨울 거야.”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외동딸을 키우는 나는 아이의 모든 행동인 신경 쓰였다.
교복도 벗지 않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 폰만 만지는 아이,
게다가 방은 태풍이 지나간 듯 엉망진창이 되어 있다.
신랑과 나는 깔끔한 편인데, 도대체 누굴 닮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딸의 방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아이는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서, 나는 지저분한 방이 보기 싫어서 닫기도 했다.
아이와 계속되는 전쟁에 나도 아이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잔소리로 아이와의 관계는 엉망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는 성장하면 나의 품을 떠날 것이다.
아이가 떠난 후에 느끼는 외로움과 허전함을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라인 독서 모임을 만났다.
원래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아이 육아하면서 잠시 멀어졌던 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에게만 쏟아부었던 시선을 줄이기 시작했다.
물론 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안 보려고 노력했다.
새로 시작한 독서 모임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읽은 분량을 노트에 정리했다.
한 권씩 쌓여가는 노트를 보면서 뿌듯했다.
쌓여가는 노트와 함께 또 다른 나만의 일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을 위해 배웠던 천연화장품과 비누 강좌를 아파트 단지에 공고를 내고 우리 집 거실은 작은 교실이 되었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것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하나씩 무언가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퍼실리테이터도 배우고 강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갔다.
전국 곳곳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우리 딸이 얼마나 괜찮은 아이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아주 건강하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걸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지금은 딸이 대학생이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엄마고 아직도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래도 나는 우리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중2 때문에 북한도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그 중2병이, 나에게는 오히려 감사한 기회였다.
아이가 나를 밀어낼 때, 나를 비로소 찾기 시작했으니까.
#중2병 #나에게는기회였다 #건강하게자라줘서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