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게 산다는 것> 01.
고백하자면 나는 태생적으로 비관주의자다.
한번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곧장 비극적인 상상으로 치닫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이라면 비극적인 상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아무 상관없다는 사실도 이해할 것이다).
또 하나, 무슨 일에서든 지나치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내 나쁜 버릇 중 하나다.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되는 것 중 하나가 어쩌면 그렇게나 감정적으로, 반응적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내 인생에 생겨난 수많은 얼룩을 생각하면, 그냥 작은 점이 되어 지상에서 사라지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제발 좀 담백하게 살아보자’는 말이 내 삶의 버킷 리스트가 되기에 이르렀다.
왜 그렇게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복잡하게 반응했을까?
내가 생각하는 담백함은 컴퓨터 언어인 ‘이진법’과 관계가 있다. 이진법은 0과 1만으로 무한 반복이 가능하다. 주역 괘의 언어도 이진법이어서, 오로지 양과 음으로 세상만사를 다 그려낼 수 있다. 즉,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모든 것을 다 포용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의 삶은 이진법이 아니다. 십진법, 아니 수백 진법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러한 복잡한 마음속 계산에서 단순한 이진법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담백함’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예를 들어 우리가 결정을 내리고 선택한다는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완전히 미련을 버리는 것이다. 둘 중 하나만 취하는 셈이다. 그것이 바로 이진법의 담백함이다. 즉,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마음’이 바로 담백한 삶의 기술이 아닐까 한다.
출처 : <담백하게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