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스레터 #60
성공한 사람들, 특히 실리콘밸리의 창업가들이 “매일 꼭 한다”고 언급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것은 심리적 안정을 줌으로써 스트레스를 완화해 준다고 하죠. 무엇인지 눈치채셨나요? 바로 ‘명상’이에요. 명상을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기란 쉽지 않죠. 게다가 명상이 처음인 사람이라면 졸음만 몰려올 뿐… 아무 효과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명상이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지금 집중해 주세요. “클라이밍도 명상”이라고 말하는 요가 강사 여산을 만나고 왔습니다. 지금부터 여산과 단팥이 나눈 클라이밍, 요가 그리고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공개할게요!
* 여산과 단팥은 알고 지낸 지 벌써 8년이나 된 친구 사이예요. 그래서 이번 콘텐츠는 반말로 작성됐습니다. 친구와 대화한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즐겨주세요.
단팥: 아직 여산을 잘 모르는 슬스레터 구독자가 많을 테니, 간단히 소개를 부탁해.
여산: 하타 요가를 수련하는 여산이라고 해. 여산(如山)은 ‘깨달음의 산에 온 듯하다’는 의미를 담아 스님*께서 지어주신 법명이야.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6년 동안 고행했던 전정각산을 생각하며 지어주셨대. 또, 내가 산을 좋아하니까 이름에 산을 넣고 싶었다고도 하시더라고.
*여산은 법증 스님께 태극권을 배우고 있다.
단팥: 예전부터 산을 좋아해서 등산도 자주 갔잖아.
여산: 산뿐 아니라 워낙 자연을 좋아하니까. 올해부터는 자연 암벽도 많이 경험하고 싶어. 빌레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멀티 피치도 배우고 자연으로 나가보자고 하셨거든. 빨리 날씨가 좋아져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
단팥: 역시 여산은 한번 시작한 일은 무엇이든 끝장을 보는 것 같아. 요가도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잖아.
여산: 맞아. 사실 요가 지도자 과정을 들으면서도 강사를 할 생각은 없었어. 그런데 듣다 보니 가르치는 게 정말 재미있더라고. 내가 요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내 삶에 유익하다고 느끼니까 다른 사람에게 나눴을 때 기쁨이 무척 컸거든. 이후에 회사 다니면서 요가 강사 생활을 2년 정도 병행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누는 기쁨이 점점 더 커지는 거야. 결국 작년 말에 퇴사하고 요가에 전념하기로 했지.
단팥: 요가의 어떤 점이 유익하다고 느꼈어?
여산: 일단 나는 항상 긴장도가 높은 사람이었어. 심지어 강박증도 있어서 짜놓은 스케줄에 너무 집착하곤 했지. 특히 회사에서 일할 때 집중하면 숨을 꾹 참다가 계속 한숨을 몰아쉬는 거야. 그러다 보니 목, 어깨에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고 두통이 오고… 요가를 시작한 뒤 비로소 내 몸을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지. 나의 높은 긴장도를 인지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더라. 요가는 운동한다고 표현하지 않고 ‘수련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몸으로 느끼고 배운 거야.
단팥: 오! 나도 일할 때 숨을 몰아쉬는데, 무척 공감된다.
여산: 우리뿐 아니라 현대인 대부분이 긴장을 너무 많이 한 채 살아가는 듯해. 요가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어. 실제로 요가 수업 마지막에 사바 아사나(바닥에 누워 호흡하는 자세)를 하잖아? 그때 다른 사람들이 편안하게 긴장 풀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내 긴장이 다 풀려. 난 수련을 해도 행복하고 수업을 해도 행복하고, 이 직업은 평생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 그래서 퇴사할 때도 별로 망설임이 없었어.
Chapter 2.
단팥: 그런데 요가는 릴렉스, 평안의 대표주자라면 클라이밍은 도파민, 고자극의 상징인데 어쩌다가 여기에도 발을 들이게 된 거야?
여산: 원래 요가, 태극권, 프리다이빙처럼 이완하는 운동을 좋아했어. 한참 그런 운동만 하다 보니까 사람이 너무 차분해지는 거야. 주변 사람들이 “몸이 안 좋아?”라고 물을 정도로 에너지가 가라앉더라고. 그러니까 뭔가 양(+)적인 에너지를 쓰는, 내 삶에 좀 밸런스를 맞춰주는 운동을 하고 싶어졌지. 그렇게 러닝도 시작하고 클라이밍도 접하게 됐어.
또, 내가 겁이 많아. 볼더링 할 때도 무서웠는데 리드는 처음 할 때 손이 달달 떨리는 거야. 그때 겁을 무시하고 다음 홀드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내 몸에 집중하니까 떨림이 가라앉았어. 이런 점이 ‘오, 요가 수련하고 되게 비슷하다’라고 느꼈지. 그렇게 조금씩 내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세이프 존을 넘어가고 깨는 재미도 있었어. 도저히 안 될 듯한 한계를 넘어섰을 때 쾌감도 크고.
단팥: 나도 여산에게 요가를 배우면서 클라이밍과 무척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요가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듯이, 클라이밍도 마찬가지잖아. 물론 뒤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집중하면 그 소리가 잘 안 들릴 만큼 내 손끝과 발끝에 몰입하게 되니까.
여산: 맞아, 그래서 난 클라이밍도 명상의 한 종류라고 생각해. 클라이밍이 엄청 경쟁적이고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찍어서 올리며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잖아. ‘벽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나’ 이게 클라이밍이 본질이지.
사실 요가도 경쟁적으로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머리 서기가 안 되는 사람, 되는 사람, 누구는 이 자세를 못하고 누구는 하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부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거든. 근데 수련자들이 그렇게 내가 아닌 바깥에 집중하면, 즉 의식이 나한테 있지 않으면 다쳐. 클라이밍도 똑같아. 무조건 탑만 보고 ‘저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하면서, 내 몸은 의식하지 않을 때 다치잖아.
단팥: 근데 명상이 다소 추상적인 행위라서 와닿지 않는 분들도 있을 거야. 여산이 “명상”이라고 콕 집어 말해주기 전까지 내가 느끼는 감각이 명상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 도대체 명상이란 뭘까?
여산: 어떤 행위에 몰입하는 상태가 되면 명상적이라고 봐. 그게 명상이다, 아니다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야. 예를 들어 핸드폰 하고 다른 거 하면서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온전히 차를 마시는 데 집중하면 잡념이 사라지잖아. 이걸 흔히 “차 명상”이라 불러. 어떤 사람은 명상을 위해 숫자를 세기도 하고, 누구는 호흡을 가다듬기도 해.
우리가 클라이밍을 할 때, 내면으로 의식을 계속 가지고 와서 몰입한다면 “클라이밍 명상”이라 할 수 있겠지. 실제로 오래 클라이밍을 한 분들을 보면 ‘이 사람이 정말 온전히 이 행위에 몰입하고 있구나’ 하는 게 느껴지잖아. 마치 오랫동안 수련해 온 사람들처럼.
단팥: 그럼 명상의 효능은 뭐길래 성공한 사람들은 추천하는 걸까?
여산: 명상하면서 내가 느꼈던 효능은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점이야. 명상은 우리의 의식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가 있지 않은 상태거든. 오직 현재 지금 내 몸, 내 마음 상태에만 집중하는 행위야. 그렇게 되면 쓸데없는 불안이나 두려움이 없어지는 듯해.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하는 후회라든지, ‘그 일이 발생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은 내가 해결할 수 없고,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지의 일이잖아.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는 점도 명상의 효능 중 하나야. 즉, 명상은 단단한 마음의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과 같아. 어떤 씨앗을 심든 건강한 토양이어야 잘 자라잖아.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명상을 하고, 명상을 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거 아닐까?
단팥: 일리 있는 해석이다. 하지만 명상만 하려고 하면 나만 졸린 걸까… (웃음)
여산: 집중점이 없어서 그래. 우리는 하나에 집중하기엔 너무 다양한 상황에 놓여 있고, 세상이 빠르게 변하기도 하잖아. 그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란 무척 어려울 수밖에 없지. 그렇지만 벽에 붙으면 벽과 나밖에 없으니까 오히려 더 쉬워질 수 있어. 눈앞에 있는 돌, 내가 잡고 있는 돌의 감각, 발끝의 감각에만 집중하고 잡념은 사라지잖아. 게다가 떨어질 수 있는 극한의 상황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몰입할 수밖에 없으니, 어쩌면 암장은 명상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지.
그리고 내가 배웠던 요가 선생님은 “마음 수련하려고 하지 마라. 몸 수련하면 마음 수련이 알아서 된다”고 얘기했거든. 클라이밍 오래 하신 분들 보면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아? 나는 요가, 클라이밍 말고도 육체를 사용하는 모든 분야의 끝에 다다르면 다 명상적인 상태가 된다고 봐.
단팥: 그렇지, 그들은 다 아우라가 있네. 그러면 우리가 수많은 행위 중에 자신만의 명상을 찾으려면 뭘 해야 할까?
여산: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해. 만약 커피를 좋아한다면 회사에 출근해서 내가 좋아하는 원두로 커피를 한 잔 내려서 한 5분 동안 온전히 집중해서 마시는 거야. 근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면 시도조차 못 하겠지.
단팥: 와, 사람들은 명상을 해야 나에 대해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반대로 명상을 하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야.
여산: 우리가 각종 소셜 미디어를 보다 보면 하나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현실이잖아. 그러니까 더더욱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야. 무엇을 더 하려고 하기보다, 습관적으로 하던 핸드폰, TV 보는 일들을 안 하는 게 중요해. 물론 이 단계부터 여려울 거야. 그런 점에서 클라이밍이 정말 좋아. 하다 보면 핸드폰? TV? 안 보게 되잖아. 물론 영상 촬영하는 분들도 있지만, 어쨌든 시간 가는 줄 모르잖아. (웃음)
Chapter 3.
단팥: 내가 봤을 때 여산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혹시라도! 아직 못 이룬 버킷리스트가 있어?
여산: 버킷리스트라기보다는 앞으로 차근차근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어. 바로 요가원! 근데 거기서 꼭 요가를 가르칠지, 아니면 다른 걸 가르칠지는 아직 모르겠어. 요가나 태극권을 나누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야.
또, 시를 꾸준히 쓰고 싶어. 내 인생에 어떤 분기가 있다고 하면, 지금은 몹시 몸에 몰입하고 있거든. 이 시기가 지나가면은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 때까지는 계속 관련 전공이었으니까 언젠가 시집을 내도 좋지 않을까?
아,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다. 우선(연인)과 결혼식 대신 체육대회를 열고 싶어! 둘 다 결혼에 대한 특별한 로망도 없고 세레모니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체육대회는 하고 싶어. 내 지인들이 대체로 요가인, 클라이머, 러너 이렇게 구성되는데, 세 부류를 모아서 체육대회를 열면 재밌지 않을까?
단팥: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결혼식이네. 혹시 클라이머로서 목표도 있어?
여산: 안 다치고 즐겁게 오래 클라이밍 하는 것! 사실 이게 제일 어렵지. 뭐든지 약간 미지근한 온도로 대할 때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아. 무리하게 욕심 내기보다 만족하면서 말이야. 참고로 요가에서는 만족을 ‘산토샤’라고 해. 물론 어렵겠지만 해내야지.
단팥: 마지막으로 여산에게 클라이밍이란?
여산: 클라이밍이란… 진짜 어렵다. 흠… ‘나의 세이프 존을 넘어가는 연습’인 것 같아. 연습 때마다 세이프 존을 넘어가는 태도를 어떻게 설정할지 계속 고민하는 거지. 세이프 존을 넘어갈 때 의식이 외부로 가는 순간 다치니까, 나한테 가지고 와야겠지.
단팥: 앗, 우리가 세이프 존(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면 때로 외부적인 자극이 필요하잖아. 그런데 내면에 집중하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아.
여산: 그래서 균형이 중요하다고들 하나 봐. 요가에 “덜 뻗어서도 안 되고 더 뻗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 있어. 어떤 자세를 할 때 덜 뻗으면 자신감이 없는 거고, 더 뻗는 건 욕심이라 그 중간을 찾아가는 게 중요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말인데, 클라이밍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균형을 잃고 아차 하는 순간 다치니까. 더더욱 나에게 집중하며 마음을 다스려야지.
단팥: 정말 마지막, 최최최종으로! 클라이밍에 도움 되는 요가 자세(아사나)를 추천해 줘.
여산: 나는 클라이밍 시작하기 전에 골반 위주로 풀어주고, 하고 난 후에는 후굴 자세(뒤로 젖히는 자세)를 많이 해. 왜냐하면 클라이밍은 전굴(앞으로 숙이는 자세) 중심의 운동이거든. 그래서 몸 앞면을 길게 늘려주고 척추를 신전해 주는 후굴 자세를 해주면 좋아. 흔히 코브라 자세라고 부르는 ‘부장가 아사나’를 추천해. 또, ‘아나하타 아사나’도 꼭 해봐.
한 시간 조금 넘도록 여산과 보이차를 마시며 클라이밍과 요가, 명상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는데요.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다 보내드릴 수가 없어 아쉬워요. 특히 ADHD와 클라이밍의 관계, 클라이머를 위한 요가 원데이 클래스 등에 관해 나눈 이야기는 꼭 전하고 싶은데…! 다 썼다간 레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요.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따로 전달해 드릴게요. 그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슬스레터를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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