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4학년 때부터 힙합이라는 장르를 사랑했던 어쩌면 짝사랑이기도 하겠지만, 그러기엔 비트를 찍고 작사도 해서 '완전한 짝사랑'이라고 할 순 없다. 물론 클래식이나 재즈도 어렸을 때 피아노를 연주하였기에 '기본적인 틀' 사랑했다. 그래서 재즈보다는 클래식을 조금 더 정이 갔는지도 모른다. 그 사랑은 학원을 그만두게 되면서 그 사랑은 잠시 식었었다.
피아노를 연주를 하면서 내 친구들은 '아이돌'을 좋아서 '굿즈'들은 모을 때 나는 노트에 좋아하는 래퍼의 가사를 쓰며 행복을 맛보고 있었다. 아이돌에게는 눈을 꽤 늦게 뜬 소녀 있기에.
힙합의 특성상 발라드 랩이 아닌 이상 웅장한 비트와 언어유희들과 거침없이 뱉은 가시 돋은 말들이 나는 내 삶이 막혔다고 생각을 했었기에 누군가 시원하게 사이다를 뿌린 것 같아서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말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차가워지는 내 성격을 내가 알기에 업무적이거나 학생 때는 작은 사회인 학교생활에서는 많이 참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탈출구는 엄마가 아침마다 챙겨주는 과자와 캔디류인 것들을 많-이 챙겨주셨다. 그리고선 주로 힙합을 들으며 등교를 하고선 래퍼들은 내 '대변인'같았다. 왜냐하면 내가 이야기를 하면 내 나이또래인 애들은 '싹수없다'라고 하였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은 매우 뜨겁고, 거침없는 랩을 뱉었다. 아마 내 중학교 졸업할 때 즈음 힙합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높게 나와서 아이들이 그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기에 그때 드디어 '마이너 탈출'인 것 같으면서도 나만 알고 싶은 약간의 놀부심보도 들었지만, 점심시간마다 아이돌 노래 대신 '다이내믹듀오'의 노래도 나오고 힙합씬에 노래들이 점심시간을 나에게는 삶의 질을 높였다.
장애의 대한 것도 작곡을 해서 비트도 만들어서 사이트에 올리던 시절이었기에 더욱더 국내 힙합과 외국힙합이란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장애에 대한 오해나 다른 사람들이 툭툭 던졌던 아픈 말들을 그대로 쓰기도 하였다. 그래도 양심에 찔리지 않는 장르였다.
예술적 허용이었기에..
지금 그 아이를 생각하면 어쩌면 그 소녀는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너무나 일찍 알아버린 사회의 차가움과 페르소나를 알아버린 것을.
힙합을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는 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