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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슬 Jun 19. 2024

기수를 꿈꾸던 중2소녀.

중학교 2학년 때, 교육청 장애아동프로그램으로 '재활승마프로그램'이 처음 있었을 때 엄마는 참가신청을 나도 모르게 하였다. 그렇게 되면서 '기승이 가능한 자.'또는 '기승이 불가한 자'를 구분하기 위화여 모두 정형외과로 가서 X-ray를 찍고, 재활의학과 선생님의 소견서를 받았다. 기승구별법은 생각보다 쉬웠다. '척추 옆굽음증' 유무에 따라 기승가능이 구별되었다.


나는 기승이 가능한 케이스였다.


드디어 마장으로 가는 날이 되었고, 처음에는 '내가 이걸 왜 해야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하였다. 대학생들은 내 사이드워커(옆에서 기승을 한 상태로 낙상방지 및 도움을 주며 옆에 있는 사람.)가 있었고, 리더(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가 있었다. 실내 승마장에서의 모래는 운동장 모래와 바닷가모래의 촉감이 신발 끝에 느껴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이드워커들과 내 차례가 와서 가보니 등자, 고삐 등등 기본자세등을 첫날에 배우기 시작했다. 말을 기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처음 만난 말인 '초코'와 교감을 하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일주일에 '수요일'마다 승마프로그램을 하는 날이었다.


'막상 타보니 재미있는데?'라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냥 리더가 고삐를 잡고 앞으로 쭉- 지나가는 느낌일 줄 알았는데 이것은 '나의 안일한 생각'이었다. 정말 스스로 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기대가 되기 시작하고, 항상 수요일이 기대가 되기 시작하였다. 점점 고삐로 방향변경법, 속보 등을 배워가면서 어느새 승마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며 웃고 있었다.


"오늘부터 내 장래희망은 승마선수예요."라고 신난 상태로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정말 내 장래희망은 '승마선수'가 되었고, 다른 장래희망은 신기루처럼 없어져버렸다. 흥미보단 적성을 찾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때부터 근거 없는 자신감에 어깨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그때쯤,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승마대회'에서 매달을 땄던 것도 그때의 나에게는 엄청난 동기부여로 한 몫하였다. 그 뒤로는 모든 관심사가 '말'에 꽂혀있었다. 검색기록이 승마의 관한 용어들로 도배가 될 정도로.


그 마음을 이해해 주신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장애인승마대회라는 대회는 '관람'하러 갔었다. 그래서 이곳저곳 보러 다녔다. 그만큼 지지해 주시려고 노력해 주셨고, 그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어느 날, 00 대학교 마사과홍보대사로 활동을 하기 위해서 내 사진과 영상을 찍기도 하고, TV출현도 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승마를 몇 시간씩 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나는 우리나라 최초 지체장애인기수가 될 테야.'라고  하고 다녔다. 내가 기승을 했던 아이들도 외울 정도였으니.


초코, 유림, 초코 <이 순서대로 아이들을 기승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재활승마가 끝나고, 어느새 내 미래를 보니 공부가 답이어서 기수의 꿈은 품에 고이 품었다. 그리고 승마는 내 취미가 되었다.


가끔 제주도에 갈 때 '승마'를 하러 가면 주로 '다치기 전에 승마선수였어요? 자세가 좋은데요?'라고 하며 바닷가 근처를 말을 타고 속보로 달렸던 순간이 떠올라 내 한 때의 장래희망을 펼쳐본다.


그 주로 들었던 말을 들었을 때 아직도 뿌듯하고,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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