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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샤 Dec 08. 2023

물고기가 잡혀 있던 어항, 아니 편의점

 다락방의 장례식 (5)

탁.


스크린에 손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텅 빈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탁.


10초 뒤, 다시 같은 소리가 났다.


그녀에게는 익숙한 소리였다. 스마트폰 화면과 손톱이 부딪힐 때 나는 둔탁한 소리. 여대생은 그 소리가 끔찍하게 싫었다. 무기력과 중독의 소리였다. 멍하고 퀭한 검은 눈들의 말소리 같았다. 그때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형제자매님들, 이제 새벽 시청회를 마치는 기도를 하겠습니다."


하얀 소복을 입은 남자가 단상 위에서 말했다. 추운 겨울 난방도 안 되는 방 안에서 신도들은 낡은 패딩을 껴 입고 단상 주위로 모여들었다.


"자비로우신 김호봉 교주님의 은혜에 힘입어 오늘도 새벽 시청회를 무사히 마칩니다. 부디 오늘도 저희가 본 계시와 묵시를 잘 이해하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소서."


여대생은 오래 무릎을 꿇고 있어서 저린 다리를 주무르며 다 쓰러져가는 상가 건물을 나섰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왔니?"


편의점에 들어서자 그녀의 엄마가 분주하게 처음 보는 갈색 짐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가게 잘 보고 있어."


"어디 가?"


여대생은 매대에서 여행용 칫솔 세트를 챙기는 엄마를 보고 인상을 썼다.


"뭐 하는 거야? 엄마, 오늘 새벽 시청회는 왜 안 왔어?"


엄마 등쌀에 가고 싶지도 않은 시청회를 매일 갔건만, 정작 오늘 엄마는 오지도 않았다. 새벽부터 어딜 갔나 했더니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진 않았다.


"... 교주님 명령이야."


엄마가 말했다.


"출장 다녀오는 거니까 너는 가게나 잘 지켜. 알지? 너는 여기 있어야 귀인을 만날 수 있어."


"교주님 명령?"


여대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일개 신도인 엄마한테 왜..."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나섰다. 홀로 고요한 새벽의 편의점을 지키며, 여대생은 묘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


"저녁 영상 시청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여전히 차가운 방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여대생은 여느 때와 같이 낡은 헤드폰을 머리에 썼다. 핸드폰에는 새로 받은 '계시'가 업로드되어 있었다.


"... 지금 아빠가 퇴마사였다는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영상 속 여대생이 울먹였다.


"그럼 지난번 폭발 사고의 범인이..."


여대생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지난번 계시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았다. 퇴마사 김호봉의 주름도 조금 더 깊어 보였다.


"... 네 아버지인 것 같다."


여대생은 주저앉았다. 이명이 들렸다. 내가 살인자의 딸이라니. 그녀는 영상을 따라 중얼댔다.

 

처음 편의점에 '갇힌' 것은 여덟 살 때였다. 엄마는 사업 실패로 세상을 등진 남편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낼 때 김호봉을 처음 만났다. 그는 계시를 받았다면서 아빠의 빚을 갚아주고 엄마에게 일자리를 주었다.


편의점은 그녀에게 내려진 계시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전생의 얽힘'이 그렇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귀인을 만날 운명이었다. 엄마는 딸을 위해 편의점을 지켰다. 딸은 물론 자신도 편의점 주변을 떠날 수 없었다.


"영상 시청회를 마칩니다. 다들 모여주세요."


새로운 계시는 1시간 정도 이어지는 시청회 내내 반복해서 시청해야 한다. 낮은 화질의 짧은 동영상을 60여 번 보게 된다. 계시는 신도들의 전생과 운명, 나아갈 바를 알려준다. 교주인 김호봉과 그가 내린 계시는 절대적이었다.


그날 저녁, 여대생은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늦은 저녁을 때우며 편의점을 지켰다. 계산대 한편에 엄마가 놓은 소형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엄마.....?"


티브이 속 엄마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얼굴은 회색빛에 수갑을 찬 두 손은 차가워 보였다. 여대생은 숨을 쉬려고 헐떡거렸다. 뉴스 자막은 그녀의 엄마가 모 요양원의 80대 여성을 살해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윽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계시가 성취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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