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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샤 Nov 26. 2023

물고기가 잡혀 있던 어항

 다락방의 장례식 (4)

수요일. 젊은 정신과 전문의는 조금 들떴다. 매주 이 시간이면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진료를 위해 그녀는 왕복 세 시간 정도를 운전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르신, 잘 계셨어요?"


작은 요양원이었지만 정갈하고 아담했다. 미색 벽지에는 울긋불긋한 장식이 가득했다. 직원들이 연말 느낌을 낸다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모양이었다.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실내에는 그런 직원들의 노력이 무색하지 않게 노인들이 어딘가 편안한 표정을 간직한 채 돌아다녔다. 정신과 전문의는 복도 한편에 놓인 어항 앞에서 따뜻한 니트를 걸친 채 서 있는 그녀의 환자를 발견하고는 다가갔다.


"어머, 이 어항-"


그녀는 어딘가 깨끗해진 수조를 살폈다.


"직원들이 청소해주셨나 봐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항 속 물고기들은 깨끗한 물속에서 쉴 새 없이 헤엄쳤다.


"잘 됐네요. 물고기들이 행복해 보여요."


두 사람은 말없이 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응접실로 향했다. 소파에 러그가 깔린 아늑한 방으로, 볕이 잘 들어 그녀의 환자가 가장 좋아하는 방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곧 직원이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었다.


"어르신, 이번 주는 잘 지내셨어요? 별일 없으셨고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도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네요. 올해가 다 갔나 봐요, 벌써."


"... 크리스마스는 싫어요."


불쑥 시작된 노인의 말에 의사는 침착하게 대응하며 가방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그렇군요... 왜 싫으세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 나는 열정 없는 사이비였으니까요."


노인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나갔다. 정신과 전문의는 천천히 노인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




"어서 오세요."


편의점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없던 틈을 타 한창 시험공부 중이던 아르바이트생은 피곤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재빨리 계산대를 정리했다. 연말이라 그런지 편의점에도 크리스마스 장식과 선물용 초콜릿 등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커플 손님들도 더 자주 보이는 것 같았다.


내 신세야, 아르바이트생은 생각했다. 가장 예쁘고 좋을 때라는 스무 살이면 뭐 해, 연애는커녕 시험공부에 알바에 눈코 틀새 없이 바빴다. 크리스마스가 나랑 무슨 상관이람? 나한테는 그냥 월세날일 뿐이었다.


"저기요."


고개를 드니 덩치가 산만한 남자가 양복을 쫙 빼입고 새카만 선글라스를 끼고 서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고개를 쳐들었다. 편의점 알바 경력만 3년, 중요한 건 기싸움에서 이기는 거다.


"네, 손님. 계산해 드릴까요?"


남자는 빈 양손을 내밀어 보였다.


"뭘?"


그러더니 피식 웃고는 양복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계산은 됐고. 학생, 알바 안 해 볼래?"


-퇴마사 김호봉. 빠르고 깔끔하게 처리해 드립니다. 012-3456-7890.


"... 퇴마사... 요?"


멍하게 되묻는 아르바이트생이 비치는 선글라스 너머로 퇴마사 김호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관심 없어? 재능 있어 보이던데."


재능...이라고? 그때 다시 한번 편의점 문을 여는 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찬 기운이 편의점 안을 휘감았다.


"... 어서 오세요."


익숙한 얼굴의 손님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부러진 목에서는 피가 흐르는 여자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퇴마사 김호봉과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질겁을 하고 편의점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학생, 뭐 해? 손님이 계산도 안 하고 도망가잖아!"


"예? 어어, 아저씨! 잠깐만요!"


그렇게 아르바이트생과 퇴마사는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오는 길이 생각보다 더 긴 여정이 될 줄은 전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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