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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샤 Nov 26. 2023

다락방의 바나나 그리고 고양이 입에 물고기

 다락방의 장례식 (3)

'피시천국 - 수족관 시공, 청소 전문'.


전광판이 깜빡였다. 덩치가 좋은 남자는 잠시 전광판을 쳐다보다가 이내 같은 이름이 새겨진 트럭에 올랐다.

트럭은 낡은 탓에 신음 소리를 냈다. 남자는 그 소리가 어딘가 듣기 좋았다. 남자는 낡은 것들을 좋아했다. LP를 수집했고, 집에는 20년도 더 된 가전제품들이 가득했다. '무엇이든 고쳐 쓸 수 있다.' 그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런 신념 때문인지 그는 10여 년을 교도소 간수로 일했다.


“안녕하세요. 수족관 때문에 오셨죠?”


오늘 의뢰를 받은 곳은 작은 사설 요양원이었다.


"여긴가요?"


수조는 성인 남자가 양팔을 벌린 길이 정도 되어 보였다. 낡고 관리가 엉망이어서 여기저기 초록색 물때가 보였다. 뻐끔거리며 헤엄치고 있는 대여섯 마리의 물고기들도 어딘가 힘이 없어 보였다. 


"사실 관리가 힘들어서 저희도 없애버리고 싶지만..."


직원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이걸 하루종일 보는 분이 계셔서요."


아까부터 뜨거운 시선이 느껴진다 했더니, 직원이 가리키는 기둥 뒤에 웬 할머니가 숨어 있었다. 할머니는 수조 주변을 맴돌며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물고기 구경하는 게 유일한 취미세요. 처음 요양원 들어와서는 밥도 안 드시고 적응도 못하셨는데... 어느 순간 물고기 구경에 재미를 붙이셔서 하루종일 수조를 들여다보신다니까요."


남자는 크흠, 하고 불편한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작업을 시작하자, 요양원의 노인들이 뭘 하는 거냐며 다가와서 한두 마디씩 하고 갔다.


"아아, 이거.. 청소하는 거예요. 청소."


남자는 멋쩍게 대답하고는 서둘러 작업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 아까 그 할머니가 다가왔다.


"... 물고기가 다 봤어요."


작고 떨리는 목소리에 남자는 귀를 기울였다.


"예? 뭐라고요, 어르신?"


"물고기가... 물고기가 다 봤어요."


할머니는 어딘가 겁에 질려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초점 없는 눈을 보자 남자는 속이 불편했다.


"뭘 봤는데요?"


남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 다락방의 바나나요."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양철 물통이 굉음을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사방에 물이 흥건해졌다. 남자의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떨어지자 그의 눈에는 노인의 마른 입술만 보였다.


"나예요, 나."


노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녀는 무미건조한 얼굴을 숙여 수조 속 물고기를 쳐다보았다.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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