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장례식 (2)
바나나 나무가 자라기 시작할 즈음,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한동안 다락방은 잊고 지내겠다고 결심했지만, 다락방과 바나나는 이따금씩 생각나서는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런 날이면 집 앞에 사는 길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시간까지 나는 자주, 그리고 오래 다락방에 와서 머물렀다.
엄마는 나를 낳고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그때 썼던 일기를 다락방에서 발견했다.
-13일 차. 아기는 하루종일 울기만 한다. 뭐가 불만인 걸까? 남편을 닮은 걸까? 남편의 무뚝뚝한 얼굴을 보면 끔찍하다.
그날은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 나의 존재가 더해지는 밤이었다. 길고양이가 울었다. 다락방 창문으로 고양이를 내다보았다. 고양이는 담과 담을 넘어 어둠 속으로 향했다. 두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스스로 빛나는 눈을 지녔기 때문일까?
-80일 차. 아기에게 이름이 생겼다. 고심 끝에 지었다. 너무 기쁘다. 우리 아기는 참 예쁘다. 오늘은 남편이 집 앞 시장에서 바나나를 사 왔다.
바나나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때 나는 다락방과 바나나에 대해 잊은 지 오래였다. 어느새 회사원이 되었고, 차츰 먹고사는 걱정만이 전부가 되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다락방과 바나나를 떠오르게 한 것이다.
석 달만에 본가에 간 날, 나는 고양이가 담 위에서 점프해 마당에 열린 바나나를 따먹는 장면을 목격했다.
-168일 차. 우리 아기는 천재인 것이 틀림없다! 벌써 말도 다 알아듣는다. 어제는 육아책을 몇 권 샀다. 요즘은 연예인들도 조기 유학이 유행이란다.
배가 아프다. 나를 아프게 한 것이 너무 익은 바나나인지, 그저 스트레스 탓인지 알 수가 없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담 위에서 바나나를 까먹으며 고양이가 나를 노려본다. 아니, 그저 쳐다본다. 어느 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