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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샤 Dec 21. 2023

닻을 올리고, 표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12)

무겁게 뿌리내렸던 것을 거두고, 길을 나선다.

도착지가 정해져 있다면 헤매도 괜찮다.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지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가끔 내 도착지는 움직인다. 저 멀리로 멀어져 버린다. 바다 위에서 표류한다.

표류하다 보면 부표를 만난다. 부표는 약간의 안정감을 준다. 바닷가가 가깝다는 신호이다. 하지만 이대로 바닷가로 다시 돌아가면, 바닷가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되풀이할까 봐 두렵다.

물을 털고 해변으로 나오면, 젖은 몸에 모래가 들러붙는다. 털어낼 수가 없다. 내 몸이 마를 때까지, 나는 불쾌한 마음으로 모래 위에 쭈그려 앉는다.

나는 여름이 싫다. 여름에는 바닷가에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다시 차가운 바닷속으로 도망친다. 더 이상 헤엄치지 못할 추운 겨울이 될 때까지.

첨벙첨벙-.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의 두 다리가 재잘댄다. 첨벙 대는 소리가 있는 한, 내 작은 몸은 가라앉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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