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을 위한 시 (17)
직장인 A 씨는 티켓에 쓰인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을 웃고 울릴 우리의 이야기 - 버스 정류장 / F열 3번'
연극을 보러 온 것은 대학 이후 처음이었다. 그것도 퇴근 후에 이렇게 시간을 내서 온 것은 더더욱. 그나마 마음이 편한 목요일 저녁이었다.
A 씨는 여느 때와 같이 착잡한 심정으로 퇴근을 하던 중이었다.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나쁜 공연 안내 센터'라는 간판에 자신도 모르게 버스에서 내려 문을 두드렸다.
"어서 오세요. 공연 추천을 받으러 오셨나요?"
연극 팜플렛을 여러 개 꺼내 보이며 직원이 A 씨를 맞았다.
"저희는 고객님의 취향에 맞지 않을 최악의 작품을 추천해 드립니다.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면서 고객님은 자신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거든요."
참으로 기행이 아닐 수 없었지만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몰랐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는 일상을 견디기 위해서는 말이다.
"오늘은 연극 '버스 정류장'을 추천드립니다. 과한 연출과 억지 신파로 평이 아주 낮은 작품이에요."
그렇게 해서 A 씨는 귀중한 시간을 내어 여기 앉아 있는 것이었다. 평이 낮은 탓인지 좁은 극장 안은 한적했다. 서너 명의 관객 앞으로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
배우가 절규했다.
"엄마, 엄마! 가지마!"
주인공의 연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자신을 버스 정류장에 버리고 간 생모를 평생 찾아다니다가 끝내 그녀에게 자신의 돈을 모두 빼앗기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다시 한번 버스를 타고 떠나는 생모를 향해 절규하며 이야기를 닫았다.
A 씨는 공연이 끝난 뒤 버스 정류장에 서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배우의 처절한 고함 소리가 귀에 아직도 들리는 것 같았다. 정류장은 늦은 시간 탓에 한적했다. A 씨는 이렇게 조용한 거리를 얼마 만에 보는지 생각해 보았다.
"여보세요, 엄마?"
고향에 계신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대충 별일 없다고 둘러대고 대화를 끝낸 후 때마침 도착한 버스를 탔다. A 씨는 차창 너머를 내다보았다. '나쁜 공연 안내 센터'라고 적힌 간판은 여전히 반짝였다.
"저희는 심야 손님도 받습니다."
직원이 말했었다.
"언제든 불쾌해지면 또 오세요. 더 불쾌한 공연을 소개해드릴게요."
A 씨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자신이 주인공을 버리고 가는 못된 생모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멀어지는 아들을 내버려 두고 죄책감 하나 없이 그는 매몰차게 앞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