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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Aug 30. 2021

입사 한달 차, 이직을 결심하다 IX

스타트업 웹디자이너의 고뇌

나 그런 사람 많이 봤어


   중소기업의 현실을 담은 웹드라마 ‘좋소좋소좋소기업’을 보면 새로 출근한 직원이 일하는 도중 도망가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이 드라마 완전 중소기업 현실이니 중소기업이 궁금하시다면 꼭 보시길)

‘에이, 요즘도 그런 일이 있나?’ 라고 느껴진다면 오산이다. 실제로 있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못만났지만 (내가 근무하는 중에는)

   하루는 팀장님이 대표님에게 말도 안되는 일로 혼나(?)고 잔뜩 지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오셨다. 그런데 팀장님이 가방과 핸드폰을 챙기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놀래 ‘팀장님 어디가세요?’ 라고 물었고 팀장님은 ‘아 저 잠깐 편의점 좀..’ 하며 서둘러 자리를 피하셨다. 벙찐 표정으로 팀장님 자리를 응시하다가 ‘뭐지? 도망가신거 아니겠지?’ ‘에이 설마..’ 하던 중 팀장님에게 카톡이 왔다. 그날이라 패드가 필요해 잠깐 나온거라고 놀라지말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데 대표가 어슬렁 어슬렁 우리 자리로 걸어왔다.

   나는 순간 대표를 놀리고 싶어서

   “대표님 팀장님 갑자기 가방 싸서 나가셨어요.”

   “뭐?”

   “집에 가신거 아니에요? 대표님이 혼내셔서?”

   “나 그런 사람 많이 봤는데”

   엥? 장난으로 던진 말에 대표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대표는 잔뜩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사람 많이 봤어. 첫출근하고 점심먹고 오면 없더라고. 다음날 안나오거나 “

    “왜요?”

    “몰라. 밥먹고 오면 없더라고”

   왜 몰라? 나는 알 것 같은데…




저는 그만두겠습니다.


   200억을 들인 카페처럼 홍보할 생각을 안해보았냐는 대표의 발언 이후 나는 이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서둘러 구인공고를 확인하고 이력서를 넣었다.

   점심 시간을 쪼개고, 병원 핑계를 대며 면접을 보러다니다 꽤 괜찮은 회사의 입사 제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도 새로운 빌런의 등장이었다. coming soon..) 입사일이 정해지자 퇴사 의사를 전해야했는데 퇴사 사유를 놓고 고민이 되었다.

   사실 언젠가 여기를 그만두게 된다면 그동안 있었던 말도 안되는 일들을 전부 이야기하며 정신차리라고 소리를 버럭 질러주고 싶었다. 대표적으로 정리하자면 웹디자이너의 정확한 업무 범위라던가, MD나 기획자의 필요라던가 (참고로 이곳은 MD가 뭔지 모른다.) 대표의 성차별, 성희롱이라던가, 제품의 발전가능성이라던가, 근무환경이라던가 (대표적으로 파티션 하나없이 직원들을 다닥다닥 붙혀놓고, 얇은 가벽 하나 둔 회의실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며 싸우는 통에 고객 전화 상담은 커녕 업무도 제대로 못 보는 분위기) 등등 여러가지 묵혀둔 것을 시한폭탄 마냥 펑! 터트리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참 쉽지가 않았다. 굳이 그만두는 회사에 내 한 몸 불싸질러 총대 메고 덤비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냥 비겁하지만 ‘아파서 그만둘게요.’를 결심했다.

   때마침 오래 지병으로 앓고 있던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갑자기 심해져 갑상선은 물론, 간수치까지 나빠져 있었다. 나는 진단서와 의사 소견서를 챙겨두고 이직 회사의 출근일을 3주 앞둔 날, 퇴사 의사를 전했다. 만들고 있던 공식 홈페이지건만 완성하고 퇴사하겠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혹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눈치채는거 아니야?’ ‘붙잡으면 어쩌지?’ 가슴이 조마조마 했었는데, 대표와 부사장은 정말로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건강 챙겨야지 이해한다고 수긍했다. (아마도 퉁퉁 부은 갑상선 라인을 보여줬더니 먹힌 것 같았다.)

   그렇게 퇴사가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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