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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Sep 08. 2021

이직 한달 차, 또 이직을 결정하다 I

새로운 빌런의 등장

이 글은 이전 연재 ‘입사 한달 차, 이직을 결심하다’ 와 이어집니다.


젊고 깨어있는 사람


  앞 시리즈에서 다니던 회사에 재직 중, 나는 이직을 결심하고 열심히 면접을 보러 다녔다. 다양한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니고 이 회사에서 어느 정도 걸러야할 점들을 겪다보니 회사 보는 눈이 생겨서일까? 면접에서부터 걸러야 할 회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무환경, 대표의 마인드, 면접관의 태도, 연봉, 야근, 업무의 범위 등등 면접관이 내게 묻는 질문보다 내가 회사에 대해 묻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여러곳의 회사를 거치고 몇 곳에서 입사제의를 받았지만 썩 마음이 내키는 곳이 없어 조금 더 이곳에서 버텨야할 지 고민하던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김X님 되시나요? 여기 이력서 넣어주신 OO인데요. 이번주에 면접 가능하실까요?”

  “네! 가능합니다!”

  “혹시 저희 캐릭터 그리실 수 있을까요? 홈페이지에 있는데 면접때 그려오실 수 있으실까요?”

  “네네 가능합니다. 혹시 몇 포즈 정도?”

  “아이고 하나만 그려오시면 됩니다. 여러개는 너무 노동력 착취잖아요”

   와! 이 사람 좀 깨어있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디자이너들의 보통 면접을 가면 그자리에서 본인들이 쓸 배너를 만들어보라던가, 혹은 회사의 컨셉에 맞는 작업물 몇가지를 요구하는 곳이 꽤 있다. 면접비는 커녕 시급도 못받는 면접자리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 사람 (대표인지 면접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깨어있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마음이 갔던 것은

  “저희는 재택근무하는 회사인데 괜찮으실까요?”

  이 한마디였다! 사실 나는 개인 작업실이 있었다. 쇼핑몰과 프리랜서로 일할 때 촬영용 스튜디오, 창고, 작업실이 필요해 얻어놓은 공간이다. 취업을 하게 되면서 거의 비워만 놓던 곳을 쓰게 될 수 있다니! 그리고 일단 재택근무 자체가 꿈의 회사 아닌가? 면접도 전에 통화 한번으로 마음이 훅 갔다.

  그리고 그 주 수요일 무려 '스타벅스'에서 면접을 보았다. 면접관은 예상과 마찬가지로 대표였다. 대표는 30대 중반처럼 보이는 남자였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내가 그동안 생각하던 그 '스타트업의 대표' 같은 느낌이었다. 젊고 마인드가 깨어있으며 기발하고 좀 남다른? 아무튼 첫인상은 그런 사람이었다. (완전히 속았다.)

  대표가 내게 제안한 것들은 1.재택근무 2.탄력근무제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원하는 시간에 퇴근할 것) 3.인센티브제 (3개월에 한번씩) 4.교육비 지원 5.야근 절대 없음 등 내 기준에서 파격적인 제안들을 했다. 그리고 대표는 나의 포트폴리오에 있던 촬영 스튜디오가 어디인지 물었고 그 곳이 나의 작업실임을 밝히자 가끔 자기가 그곳을 촬영용으로 써도 되냐며 작업실의 월세까지 지원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한술 더 떠

  "연봉을 너무 적게 부르시는 것 같아요. 저랑 일해보시고 제가 더 올려드릴게요. 그 전 디자이너가 그쪽보다 어린데 훨씬 많이 받아갔거든요!"

  라며 연봉을 높혀주겠다는 꿀같은 제안도 하는 것이 아닌가?
  또 지금 회사처럼 기획,마케팅,cs 그 어떤 것도 내게 시키지 않을 것이며 디자인에만 집중하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또 내가 운영하고 있는 쇼핑몰과 프리랜서 일도 업무에 지장만 주지 않는다면 지속해도 된다고 쿨하게 말했다.

  나는 그자리에서 바로 입사의사를 밝혔고 재직 회사에는 퇴사 의사를 밝혔다.


50이 아니고 20만원이요?


  그렇게 면접 후 한달 정도의 시간이 흘러 첫 출근 날이 되었다. 재택근무이다보니 그날 나는 내 작업실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고 대표는 전할 내용이 있고 근로계약서를 써야한다며 내 작업실에 방문했다. 대표는 처음 작업실에 오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작업실이 너무 예뻐요!' '여기 월세가 얼마랬죠?' '정말 너무 잘꾸며놓았다.' 라며 계속 칭찬을 했다. 그러더니 쇼파에 털썩 앉아 대뜸

  "XX씨 혹시 괜찮으면 작업실 같이 쓰면 안될까요?"

  "네? 같이요?"

  "네, 저희 사무실이 어제부로 계약이 종료되서 지금 저도 어제부터 집에서 재택근무 하는 참인데 XX씨 작업실 월세를 제가 지원해드릴게요. 여기서 같이 일해도 될까요? 집에서 일하면 집중이 잘 안되더라구요."

  그런데 문득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면접을 볼때는 분명히 대표가 말하길 면접 당일 하루 전, 사무실이 만료되었다고 했었고 본인은 와이프가 약사이기때문에 코로나에 민감하여 모든 직원(그래봤자 나포함 한명 더)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던 말이 떠올랐다. 본인 역시도 약 3개월 이상 재택근무 중이랬고, 뭐 어찌되었건 사무실 만료 기간은 말이 헛나왔을 수도 있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더니 또

  "OO이가 서로 호흡을 맞춰봐야된다고 그래도 2주정도는 우리 함께 일을 해봐야한다고 하기도 했구요."

  여기서 OO이는 마케팅을 담당한다던 직원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순간, 왜 직원 핑계를 대지? 하는 생각도 슬쩍 지나갔다.

   내가 계속 우물쭈물 답을 하지 않자 대표는 하하 웃으며

  "걱정마세요! 저 자주 안나와요. 일주일에 2번? 아마 그때도 잠깐 왔다 갈거에요."

  아, 뭐 그렇다면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세도 지원해준다고 하고..

  "네 그런데 혹시 월세는 얼마를 지원해주실 예정이세요?"

  "여기 월세가 얼마인가요?"

  "월세는 30이고 관리비가 여름에는 20정도 나와요. 지식산업센터라.."

  "그럼 제가 50 드릴게요."

   그때 나는 분명히 50만원이라고 정확히 들었다. 전부를 내준다고 하니 당연히 나도 승낙했었다.

   그렇게 다소 이상하지만  작업실에서 대표와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표는  작업실을 정말로 엉망으로 쓰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 분위기가 어수선하면 일에  집중을 못하는데 대표는 나의 책상(가로 180cm) 자기 컴퓨터를 가져다 놓고 정말  바로 옆에 딱붙어 일을 했다. 무선랜을 사오지 않고 컴퓨터를 들고와 랜선이 지저분하게 바닥에 깔리기 시작했고  그림들과 제품들을 자기 마음대로 치우기 시작했고 마우스나 키보드,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마치 자기 것인 마냥 마음대로 써대기 시작했다. 마신 커피들을 치우지 않아 결국  다음날 출근해서 내가 치우기도 몇번, 참다참다가 '대표님 커피는 직접 치워주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자 처음 하루 이틀은 치우는 척하더니 나중에는 책상 위가 정말 쓰레기장처럼 변했다. 핸드폰 케이스를 꾸고 끼던 케이스도 던져놓고, 거래처에서 받은 명함들도 뿌려놓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이  책상을 같이 쓰는 중에 말이다! 책상을 사오라고 해도 어차피 잠깐 있다 갈거라며 본인은 너무 편한데 혹시 불편하냐고 눈치없이 묻기도 했다.

   그리고 대표는 일주일에 5번을 하루도 빠짐없이 나왔다. 분명 일주일에 2번 정도 나올거라 하지 않았나? 5일을 빠짐없이 나왔고 야근은 절대 없다던 사람이 하루 1-2시간의 야근을 당연하게 시키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퇴근 후 '한시간에서 두시간동안 내 작업실에서 개인 작업 좀 해야지' 했던 꿈은 바사삭 없어지고 나의 작업실이 정말 대표 회사의 사무실이 되어버렸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래도 월세 내주잖아! 그럼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실은 월급날, 월세와 관리비로 받은 돈은 단 '20만원'이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여기는 월세30에 에어컨을 쓰면 20정도의 관리비가 나온다. 그럼 합계가 얼마인가? 50이다. 그리고 대표는 건물에 차량 등록까지 해버려서 추가 주차비도 5만원이 나왔다. 그럼 한달 금액은 55다. 잘 생각해놓자 55

  월급 날 나는 의문을 가지고 대표에게 물었다. 추가로 20만원 밖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대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가 20주기로 했잖아요."

  "네? 50이 아니고 20만원이요?"

  "에이 XX씨 잘못들었네~ 20주기로 했어요"

  망치로 탕! 머리를 맞은 듯이 벙쪘다. 내가 고작 20 받겠다고 내 작업실을 내준거였나? 반값도 안되는 20을 받겠다고 작업실의 배치를 마음대로 바꾸고 내 제품들을 치워버리고, 주말마다 촬영한다고 어질러놓은거 치워주고, 쳐먹은 커피까지 치워주며?

  그리고 퇴근 후 남편에게 영혼이 나간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야..대표..새끼.. 사기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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