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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Aug 06. 2021

입사 한달 차, 이직을 결심하다 Ⅵ

스타트업 웹디자이너의 고뇌

아닌 것 같으면 얼른 자르자


   나는 웹디자이너로 입사했다. 근로계약서에도 나의 근무내용은 '웹디자이너'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마케터, 기획자, 디자이너, 경리, 비서 모든 일을 하고 있었다. 쇼핑몰을 만들겠다고 나를 고용한 대표는 내게 제안서를 써오라던가 이카운트 등의 회계프로그램을 다루라던가, 그것도 모자라 고객을 위한 전화상담까지 지시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지시할 때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대표는 나를 웹디자이너로 고용한 사실마져 까먹은 것 같았다.

   입사 이주일쯤 되었을 때 대표와의 제안서 전쟁을 끝내고 공식 쇼핑몰을 만드는 '정말 웹디가 해야할 일'이 생겼다. 그런데 대표는 대뜸 나를 불러다 앉혀놓고 2시간 뒤에 온라인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 브리핑 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예? 온라인 시장 공략이요? 웹디자이너를 불러다 앉혀놓고 온라인 시장을 공략할 방안을 생각해오라니? 디자인 컨셉에 대한 브리핑이라면 모르겠지만 시장 공략을 위한 방안을 브리핑하라니? 

   그래도 이 바보 같은 김대리는 열심히해보겠다고 그동안의 쇼핑몰 운영 노하우를 모두 담아 PPT를 열심히 준비했다. 디자인컨셉부터 광고 계획, 채널 분석까지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렇게 쇼핑몰은 운영했었다. 한 4년 정도는 쇼핑몰로 못 벌지는 않았으니 이정도 노하우는 그래도 기본정도는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두시간 뒤, 브리핑을 준비하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두꺼운 검정 뿔테에 초록색의 카라티를 입고 배가 잔뜩 나온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의 남자였다. 나는 관상을 좀 믿는 편인데, 관상이 영 구렸다. 아무튼 처음 보는 사람을 앞에 두고, 대표와 부사장, 부장을 나란히 앉혀 나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두시간만에 준비한거라 허접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내가 하고자 하는 방안은 이렇다.' 라고 의견을 전달했다. 솔직하게 어땠냐고? 조금 떨긴 했지만 잘 한 것 같았다. 대표는 '좋아, 이렇게 해보자고!' 통쾌하게 소감을 전했고 부사장도 '내가 온라인은 잘 모르지만 대충 알 것 같다. 대신 광고는 나랑 수정 좀 해보자. 이런거는 내 전문이거든' 라고 의견을 전했다. 그런데 그 문제의 뿔테 뚱땡이가 뜬금없이 거만하게 말하길 

   "저는 김대리님이 무슨 소리 하는 지 전혀 모르겠네요." 

   라고 찬물을 끼얹었다. 순간 회의실 분위기가 싸해졌고 모두가 당황했다. 나는 순간 '쟨 누군데 저러지?' 라는 생각이 들어 부사장을 바라봤고 부사장은 당황하며 

    "그래. 니가 참 마케팅 전문가지? 니 의견 좀 말해봐" 

    "지금 띄어놓으신 게 블로그죠?"

   내가 준비한 PPT 화면에는 네이버의 '스마트 스토어'가 떠있었다. 내가 쇼핑몰을 운영할때 주로 판매하던 채널이었다. 난 정색하며 '스마트스토어 입니다' 라고 대답했고 그 사람은 잠시 당황하더니 

   "흠흠 스마트 스토어요. 아무튼 김대리 말하는 게 저는 잘 모르겠고요.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차라리 저렇게 광고하지 마시고 틱톡 같은거에 한번에 퐉! 5초만 내보내면 끝납니다."

   쓰면서도 참 민망하다. 틱톡이라니? 사무용기기, 대기업에 납품해야하는 장비를! 틱톡에 광고하자고? 저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지? 순간 남편이 틀어놓고 히히거리며 시간떼우는 틱톡이 머리속에 스쳐갔다. 틱톡에 이 제품을 광고하자니! 세상 신박한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노땅 대표와 부사장은 자칭 전문가라 하는 그 사람의 말을 귀기울이며 듣고 있는게 보였다. 틱톡이 뭔지 저 사람들이 알까?

   마케팅 전문가라는 그 사람이 정말 마케팅 전문가인지, 내가 한 브리핑에 문제가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이 왜 내가 한 브리핑에 꼬투리를 잡는 지는 알 것 같았다. 잔뜩 거만한 태도로 내게 작은 눈을 흘기며 떠들고 있는 그 사람은 본인이 엄청난 '전문가'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어보였다. 그러니 이 50대가 가까워지는 대표와 부사장이 '설마 틱톡을 알겠어?'하며 일단 던져보는 것 같았다. 

   나는 다소 민망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에 노트북을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나를 따라 온 부장님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

   "김대리, 커피나 한잔 하러 가요." 

   부장님과 이동한 카페에서 부장님은 '아재들이 뭘 알겠어. 그냥 잊어요.' 라던가 '입사 2주만에 진짜 힘들겠다. 그쵸?' 라는 등의 위로를 해주셨다. 그나마 부장님이 계셔서 다행이었다. 

   며칠 뒤, 나를 지적한 그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광고대행사의 직원이었다. 부사장이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광고대행사 영업을 하려고 잠깐 우리 회사에 들렸다가 내 브리핑을 함께 듣게 된 것이다. 

   뭐 아무튼, 우리 회사 직원도 아닌 그 사람에게 와장창 깨지고 난 그 다음날, 출근하여 일하고 있는데 대표와 부사장이 회의실에서 속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표는 부사장에게 담배를 피러가자는 둥 (부사장은 비흡연자) 잠깐 옥상가서 쉬고 오자는 둥 부사장을 자꾸 데리고 나가려했고 부사장은 '얘가 왜이래?' 라는 태도로 바쁘다고 여기서 이야기하라고 했다. 대표는 내가 있어도 할말 못 할말 다 하는 사람이라 직감적으로 지금 '내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거구나 깨달았다. 그리고 예감이 맞았다. 대표는 소근 거리며 말하길 

   "아니 김대리 말이야. 아닌 것 같으면 그만 나오라하고 다른 사람 뽑던가 하자"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 얘기 들어보니까 좀 별론 거 같던데 아닌 것 같으면 지금 자르자고"

   헐! 충격이었다. 어제 그 브리핑에 통쾌하게 '좋아! 이렇게 해보자고!' 하던 대표가 나를 자르자고 했다. 그 안경 뚱땡이의 이야기만 듣고 나를 자르라니! 가슴이 쿵쾅 거리고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았다. 

   "뭔 소리야? 뜬금없이 그게? 사람을 어떻게 잘라? 그리고 자르더라도 수습기간엔 지켜보는 게 맞아."

   부사장은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 굴었고 대표는 계속 소근거리며 부사장을 채근했다. 일한지 2주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배신감이 들었다. 나를 믿고 고용한 대표가 나를 자르라니? 내가 그렇게 능력이 없었나? 와, 회사가 이렇게 쉬운 데 였나?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오히려 그 사람이 이상했는데? 틱톡이라니? 세상에! 라는 등의 생각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머리가 혼란스러웠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일부러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지나 화장실로 향했다. '나 다 들었고, 기분 나빠서 더 못 듣겠다.' 온 몸으로 표현하며 걸었다. 화장실 거울을 보며 눈물을 참았다.

   '그래. 차라리 잘라라. 나도 미련없다. 웹디자이너한테 제안서를 써오라하고, 마케팅 방안을 생각해보라하고 기껏 열심히 했더니 자르라는 곳에서 나도 일 못하겠다. 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 밑에서 일할 필요없지. 잘라라'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업무를 하러 돌아왔을 때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쩌면 오늘 이 회사에서 잘리는 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차근 차근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퇴근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 길, 회사 앞에서 부사장을 마주쳤는데 부사장이 내게 대뜸 말했다. 

  "김대리! 힘내! 나는 2주만에 김대리가 이 정도 해낸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 제품 파악까지도 어려웠을 텐데 시장분석도 하고! 솔직히 좀 놀랐어! 이 회사 상장 할 때 까지 우리 열심히 해보자고!" 

  나는 머뭇머뭇 '네..'라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고 부사장은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자구!' 라며 앞서 걸어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주간 회의 시간에 부사장이 내게 물었다. 온라인 시장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나는 떨지 않고 또박또박 내 의견을 전달했다. 

  "제가 브리핑 한 그대로 해보고 싶습니다. 채널 입점도 해보고, 키워드 광고도 해보고, 브랜드 광고도 해보고 우선 해보고 싶습니다."

   부사장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해보고 데이터가 쌓이면 우리 수정해보자고"

   부사장은 내게 믿음이 있나? 어찌어찌 잘리지는 않았는데 이 회사 계속 다녀도 되는건가?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주간회의,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전달 받은 업무 분장표 마케팅 부분에 '틱톡'이 들어있던 것이다. 그것도 '틱톡'이 아닌 '킥톡'으로....


그들은 정말 틱톡이 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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