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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Aug 10. 2021

입사 한달 차, 이직을 결심하다 Ⅶ

스타트업 웹디자이너의 고뇌

회장 노릇


   조금 웃기는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렇게 회사욕을 있는 대로 하면서도 사실 일은 꽤 열심히 그리고 잘했다. 제품 교육 하나 없이, 기획안 하나 없이 디자이너가 웹디자인에다가 회계 프로그램도 다루고 마케팅 방안까지 생각해놓은데다가 전화응대도 해대니 실무 담당 부사장은 내가 썩 맘에 든 눈치였다. 너무 내 자랑 같으니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런 좇소에 그래도 내 말 잘 듣는 애 한명은 들어왔네!’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부사장의 신임을 얻고 난 뒤로 월급을 올려주지는 못할 망정 아주 귀찮은 일에 휘말렸는데 툭하면 싸움이 나서 난장판이 되는 경영진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아니 참석이라기 보다는 실컷 지들끼리 싸우다가 부장님에게 부사장이 ‘김대리 데려와봐!’ 하면 나는 일하다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불려가서 ‘김대리! 누구 말이 맞는 것 같아?’ 라는 뭣같은 질문을 들어야했다. 에이 말도 안된다고? 진짜다. 부사장2명 대표1명 지사장1명 있는 회의에 29살 막내 대리가 끌려가서 의견을 말해야했다. 정말로! 코메디도 아니고 무슨 이런 일이!

   아무튼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몇번 반복 되다보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쌩하며 화장실로 도망가거나 아예 못들은 척을 시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가롭게 이어폰을 끼고 딴 짓을 하는데 불쑥 부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김대리! 이리로 와봐! 빨리!”

   나는 그때 정말로 볼륨을 높게 하며 음악을 듣고 브런치에 글을 쓰던 중이라 가벽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 지 전혀 몰랐다. 회사에서 딴짓하다가 갑자기 누가 부르면 제 발 저리지 않는 가? 이어폰을 황급히 빼고 부사장을 따라가니 가벽 뒤 대표, 부장, 부사장이 앉아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채로 조용히 의자를 빼고 앉았다.

   “김대리! 우리 얘기 들었지? 어떻게 생각해?”

   또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전혀 듣지 못했다.

  “아..저 죄송한데요. 제가 이어폰끼고 일을 해서 전혀 듣지를 못했습니다.”

   부사장은 피식 웃더니

   “아 지금 렌탈 규정 얘기하던 중이였는데 혹시나 우리 렌탈을 쓰면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면 어떻게 할 것 인지 이야기 하고 있었어. 해결방안을 생각하는 중이야. 나는 참고로 부장 의견에 동의해.”

  나는 부장님의 의견이 뭔지 몰라서 조용히 부장님께 여쭤봤다

  “혹시 부장님 의견이 어찌 될까요?..”

  부장님은 ‘나는 ~~~~하자고 이야기했어.’ 라고 말했고 부장님의 말이 끝나기 전 대뜸 대표가

  “나는 사실 정답을 알고있어! 내 의견이 맞어!”

  라고 크게 이야기했다.

  그럼 당연히 대표 의견도 들어봐야되는 것 아닌가? 지가 정답이 있다니까? 아주 당당히 본인 의견을 말하고 싶어하는 대표에게 나는 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대표님 의견은 어떤..?”

  내 말이 끝나기 전 대표는 팔짱을 끼더니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 양반이? 의견 말하라고 불렀더니 왜 회장노릇을 하고 앉았어?”

   순간 벙찌고 민망한 마음에 ‘저는 그냥 대표님이 정답을 알고 계신다하셔서..’ 라고 대답했는데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결국 대표가 말한 의견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고 부사장은 코웃음을 치며 '니가 그러면 그렇지'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또 내 의견을 물었다. 으, 지겨워! 왜 자꾸 나를 끌어들이는거야!

  "그냥 렌탈 규정에 손해 배상 청구 부분을 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불법적인 일을 했을 경우 이렇게 처리한다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이게 최대였다. 부사장은 내 얘기를 듣더니

   "그게 될까?"

   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럼 내가 무슨 엄청난 해결 방법이라도 내놓기를 바라는 건가? 입사 한달 차의 웹디자이너가? 제품 렌탈  발생  법적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내놓을  있다고 생각 한건가?

   아니! 사실 나는 이들이 왜 이러는지 알았다. 그냥 누구 하나라도 더 끌고와서 편가르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표와 부사장 사이에서 '대표님 말이 맞아요!' '부사장님 말이 맞아요!' 하며 편들어 줄 희생양! 결국 니가 뭘 알겠어? 으이구. 내 생각이 훨씬 낫네! 라고 위안 삼을 희생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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