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도착한 분홍빛 꽃다발

슬픈 분홍빛이 다정한 위로가 되어

by 다시 나

누군가에게는 설렘의 시작인 봄이, 제게는 오래도록 '결핍'을 증명하는 계절이었습니다.

텅 빈 손에 쥐어지지 않던 꽃다발 대신, 산비탈에 흐드러진 진달래를 보며 위로받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제야 그 아이에게 뒤늦은 꽃다발을 건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2월은 졸업과 시작의 교차점입니다.

한 시절을 매듭짓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

하지만 내게 2월은 오래도록 '빈자리'를 증명하는 달이었습니다.


축하와 격려의 꽃다발 대신 부모의 부재가 선명해졌고,

졸업식 날의 짜장면 한 그릇은 돌아오지 않는 약속처럼 허전했습니다.


나의 유일한 보호자는 할머니였습니다.

일찍 아들을 잃고 노쇠해진 할머니는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줄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저 눈물 고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할머니가 줄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지안이 졸업식 날 경비원 아저씨와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아이의 서사가 단숨에 읽혀 가슴이 저렸습니다.


친구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꽃다발을 안을 때,

나는 오롯이 혼자이거나 친구의 꽃다발을 잠시 빌려 곁에 선,

작고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오랫동안 소란스러운 봄이 불편했습니다.

그 이유를 이 글을 쓰며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2월은 내가 혼자임을 보란 듯 증명해 냈고,

새로 맞는 입학식은 외로움을 부록처럼 남겼다는 것을요.


나의 봄은 설움과 슬픔이 흥건하게 배어 있어 늘 서늘했습니다.


이런 내가 봄을 기다리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중년이 되어서 건강을 잃고 나서, 나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숲에 들면서 비로소 봄을 '만지게' 됐습니다.


2월의 숲에서는 미세한 습기가 느껴집니다.

언 땅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내뱉는 첫 하품 같습니다.

기지개를 켜고 눈을 비비며 일렁이는 바람은 나무들을 흔들어 깨우고,

빈 겨울 숲을 진달래 물결로 채울 준비를 합니다.

겉은 메말라 있지만, 그 속에서는 수액이 차오르고 꽃눈을 틔우느라 가장 분주한 시간임을 이제는 압니다.


봄볕이 부서지게 쏟아져 고요하게 스며들면,

텅 빈 숲 안으로 연분홍 진달래가 점점이 번집니다.


이 모습을 마주하면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바람보다 가벼웠고 기침을 놓지 못했던, 작고 작았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그 문턱에서 나를 홀로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할머니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텅 빈 눈에 비쳤던 것은 산 가득 분분히 피어있던 진달래였습니다.


그토록 슬픈 분홍빛을 본 적이 없습니다. 슬펐으나, 아름다웠습니다.


사느라 바빠 잊고 있었습니다.

봄 산의 진달래가 얼마나 아프게 피어나는지,

그리고 할머니를 보내던 그 길에서 내가 그 꽃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었는지를요.


다시 걷게 되면서, 봄 숲에 들면서 나는 그때의 어린 소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유일한 보호자를 떠나보내고 앞으로의 인생이 얼마나 외로울지 가늠조차 못한 채 홀로 서 있던 그 아이를요.


이제는 제가 그 아이의 손을 잡아줄 수 있습니다. 그 아이를 꼭 안아 줄 수 있습니다.

2월의 분홍빛 진달래는, 그때 받지 못했던 뒤늦은 꽃다발처럼 나에게 도착한 다정한 위로였습니다.


<나의 아저씨> 속 지안이 마침내 평안에 이르렀던 것처럼,

이제 내 안의 그 아이도 더 이상 분홍빛 진달래가 슬프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듯, 애틋하지 않은 삶 또한 없으니까요.




오늘도 저는 2월의 숲을 걷습니다.

다음 계절로 나아가게 하는 다정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