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호밀밭의 파수꾼-살인자들이 좋아한 책

by life barista

살인자들이 좋아한 책

리하비 오스월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총으로 살해했다. 마크 채프먼은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을 총으로 살해했다. 존 힝클리는 레이건 대통령을 총으로 쐈지만 죽이진 못했다. 리하비 오스월드, 마크 채프먼, 존 힝클리 이들은 모두 『호밀밭의 파수꾼』을 즐겨 읽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마크 채프먼은 존 제논을 쏜 후 체포될 때까지 살인 현장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고 한다. 심지어 기자들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라고 소리쳤다고 전해진다.


이 차장도 이 책을 좋아한다. 성장소설이니까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나 어울릴법한 이 책을 그는 마흔 줄이 넘어 여러 번 읽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차장이 어떤 유명인을 총으로 죽일 계획을 가진 건 아니다. 물론 가끔 그런 생각이 드는 것까진 부인할 수 없지만, 회사 임원 중 누구를 진짜 죽이고 싶진 않다. 다만, 이 차장은 인간은 늘 성장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보다 키가 크네.’, ‘속 깊게 잘 자랐네.’, ‘곱게 늙었네.’ 등 성장이라는 표현이 나이 때에 달라지긴 하지만 말이다.


성장이라는 말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이 차장은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영원한 성장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을 늦게나마 만나게 된 걸 다행으로 여긴다.



우울할 때 생각나는 책


이 차장이 『호밀밭의 파수꾼』에 꽂힌 이유 중 하나는 ‘우울’ 때문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는 툭하면 외롭고 우울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도 갑자기 우울감을 느낀다. 어떤 날은 죽고 싶기까지 하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방년 17세 소년이 말이다.


이 차장은 올해 44살. 콜필드보다 무려 27살 많지만, 이 차장도 요즘 툭하면 우울하다. 봄엔 봄이라 , 여름엔 여름이라, 가을엔 가을이라, 겨울엔 겨울이라, 엄청 우울하다.

실은 팀장 승진에서 계속 떨어진 게 컸다. 최근에는 후배가 먼저 팀장을 달았다. 소문에 의하면, 모 임원이 이 차장을 콕 짚어서 ‘이 친구는 팀장 자질이 없다’며 결사반대를 했단다. 입사 15년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허무하고 우울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살인자들이 좋아했다는데, 얼마 전엔 자신이 그 임원을 총으로 쏘는 꿈까지 꿨다. 사실 자기를 미워하는 일이 죽을 짓도 아닌데, 슬슬 미쳐가는 것 같아 불안해 정신과 상담을 고민 중이다. 지금도 이 차장 머리에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책 표지, 시대의 살인자들, 권총, 모 임원의 얼굴이 둥둥 떠다닌다. 고개를 흔들면서 애써 외면하려 해도 분노와 우울감이 뒤범벅된 기분은 그대로 남았다. 어깨 위로 비듬만 떨어졌다.



사이다 같은 소리를 하는 우울한 소년


『호밀밭의 파수꾼』은 작가인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인 콜필드는 4번째 퇴학이 확정되었다. 교장이 쓴 퇴학 통보서는 지금 부모에게 가고 있다. 그것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두고 말이다. 아들의 4번째 퇴학 소식에 부모님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질게 분명하다. 언제나처럼 자신을 심하게 혼낼 것이다.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갈지도 모른다. 콜필드는 차라리 그전에 잠시라도 자유를 느끼고 싶어한다. 소설은 콜필드가 기숙사를 나와 집으로 가는 2박 3일 동안의 이야기이다.


이 차장은 책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낄낄 웃었다. 콜필드가 선생님들의 습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회사 임원들과의 공통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선생님들은 늘 자신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임원들도 그렇다.

선생님들은 처음 말했을 때 인정했는데도 똑같은 말을 두 번씩 한다. 임원들도 그렇다.

선생님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그렇게 자르기 마련이다. 임원들도 그렇다.


콜필드는 사이다 같이 톡 쏘는 시원한 말도 잘한다. 몇 개만 뽑으면 이렇다.

훌륭한 젊은이들을 양성한다는 학교 광고를 보면서 그가 한 말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훌륭한 젊은이들이라고는 본 적이 없다.... 어쩌면 한두 명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이 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렇게 훌륭한 학생이었을 테지.”


콜필드는 경제 양극화를 이렇게 표현한다.

“같이 방을 쓰는 친구의 것보다 내 가방이 훨씬 고급일 경우에는 사이좋게 지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이 차장도 이 말에 격하게 동감한다. 그러니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월급을 받는 경우엔 얼마나 사이가 안 좋을까. 마음이 까만 납덩이로 변했다.


인생은 규칙을 지켜야 하는 운동 경기와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그가 한 속말이다.


“시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합은 무슨. 만약 잘난 놈들 측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측에 끼게 된다면, 잘난 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편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시합이 되겠는가? 아니, 그런 시합은 있을 수 없다.”


방금 잘 모르는 사람과 헤어진 콜필드.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이렇게 재치 있고 현실감각 뛰어난 학생이 어쩌다 툭하면 우울해지는 것일까? 그는 수녀 두 사람이 아침 식사로 토스트와 커피를 먹는 걸 보자 우울해졌다. 그는 영화를 보고 싶어서, 좀 더 빨리 가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자 우울해졌다. 그는 “행운을 빌어요!” 같은 말을 들어도 우울해 졌다. 그는 각양각색의 여자들 모습을 보면 우울하다.


망할 놈의 돈 같으니라구. 돈이란 언제나 끝에 가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그는 고백한다. 이 차장은 자신도 모르게 이 부분을 패러디해 버렸다. 망할 놈의 성과평가 같으니라구. 경쟁은 언제나 끝에 가서 사람을 실패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자 이 차장도 우울해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3 닫힌 방-문은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