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필드가 우울한 이유
그렇다면 콜필드는 왜 자꾸 우울한 걸까? 여기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우울은 이유없이 태어난 인간에게 그림자 같은 거니까. 내가 있기에 내 그림자가 따라다니는데, 왜 따라오냐고 묻는 건 시비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 차장은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콜필드의 말처럼 실제로 해 보기 전에 무엇이 어떻게 될진 아무도 모르니까.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평소보다 그림자가 커졌다면, 그만한 이유쯤은 있을 법도 했다. 이 차장은 콜필드가 우울한 원인을 알게 되면 자신의 우울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까지 품었다.
‘콜필드의 마음 저 밑에서 우울감을 만들고 있는 사건은 무엇일까?’
어떤 사건이 단박에 떠올랐다. 바로 동생 앨리가 죽은 사건이다. 앨리는 1946년 7월 18일, 백혈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콜필드의 말에 의하면, 앨리는 자기보다 두 살 어렸지만, 오십 배 정도는 더 똑똑했다. 야구 글러브에 시를 써 놓고 시합 중 짬짬이 읽는 아이. 선생님들의 칭찬이 그칠 날이 없었다. 게다가 천성도 매우 착하고 밝아 앨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 아이를 싫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천사 같던 동생이 흉악한 병마에 시달리다가 불과 11살 나이에 그만 하늘나라로 가버린 것이다. 앨리가 죽던 날 콜필드는 자동차 유리창을 전부 주먹으로 깨부쉈다. 손은 그야말로 피범벅이 되었고, 다시 주먹을 꽉 쥐지 못할 정도로 뼈도 상했다. 부모님께서 콜필드의 정신분석을 의뢰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이처럼 콜필드는 동생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슬픔은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삶을 진심으로 누렸던 동생과 백혈병을, 나아가 그로 인한 죽음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13살의 나이엔 말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여기엔 하나님이든 조물주든 누군가의 결정적인 실수가 있는 게 확실했다. 이런 것이 세상살이라면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콜필드는 머리 나쁘고 게다가 성격까지 삐뚤어진 자신이 그런 나쁜 병과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죽은 동생과 자신을 비교해 볼 때, 살아남은 자신의 삶은 너무 초라하고 어두웠다. 자신만이 아니다.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나누는 대화, 그들의 취미, 관심거리, 희망 사항들은 하나같이 쓰레기 같은 것들뿐이었다. 콜필드 눈에 살아남은 자들의 삶은 죽은 동생의 진짜 삶과는 정반대인 가짜 삶에 불과해 보였다.
사람들은 실제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을 실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실제를 보여주면 그건 실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콜필드의 평가는 직설적이다.
“정말 환장하겠다.”
그의 우울은 진정성 없는 삶에 대한 구토와 같은 것이다. 헛구역질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죽은 동생 생각으로 가득하다. 소설 말미에 콜필드가 극심한 상황에 몰렸을 때, 그는 동생 앨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믿고 이렇게 부탁한다.
”앨리, 날 사라지게 하지 말아 줘. 앨리. 날 사라지게 만들지 마. 앨리. 제발, 부탁이야. 사라지고 싶지 않아. “
자신의 실제를 지켜줄 수 있는 안간힘을 콜필드는 앨리에게 부탁한다. 앨리는 바로 그런 힘의 다른 이름이다. 앨리처럼 내 삶에도 항상 밝게 웃을 수 있는 순수한 의미가 있을까? 콜필드는 그러한 질문을 품은 채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삶에 대한 순수한 환희 없이 어른이 된다는 건 절망적이다. 그런 어른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열정적으로 부르다가 공연이 끝나자마자 담배를 벅벅 피우는 거짓 존재들이다. 차라리 긴 오케스트라 공연 내내 단 한 번 치더라도 진지하게 자기 일을 해내는 북 치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 실제를 간직한 훌륭한 존재이다.
콜필드에게 무엇보다 가장 순수한 건 어린아이들이다. 어떤 꼬마의 아주 작은 목소리. 꼬마는 ‘호밀밭에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는 일상의 소음을 멈춰 세웠다. 아이들의 눈은 모든 삶의 순수함을 담고 있다. 콜필드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우울하지 않았다.
가식적인 삶과 순수한 삶 사이에서의 휘청거림. 그의 우울은 그런 아찔하고 까마득한 선택이 자신을 부르는 신호였다. 휘청거릴 때 누군가 잡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일까? 콜필드는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싶어?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 줄까?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