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옳은가 1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by life barista

초능력


새벽 3시 기상. 하루 한 끼. TV, 휴대폰, 인터넷, 성적 행동, 돈, 술 그리고 가족까지 멀리한 17년의 숲속 명상. 여러분이 이 정도 수행을 했다면 어떤 초능력이 생기길 기대하십니까?


뭔 말을 하려고 오늘따라 저렇게 뜸을 들일까. 저 정도 했다면, 최소한 공중 부양에 관심법 정도는 생겨야 고생한 보람이 있지 않을까. 혹시 유체이탈이나 불로장생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이번 달 주제는, ‘나는 옳은가?’입니다. 자기 확신과 검토를 위한 두 번째 시간입니다. 함께 읽을 책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I MAY BE WRONG)입니다. 여기에는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수업’이란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흡입하듯 다 읽은 후, 이 책을 가슴 위에 얹고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밀려오는 잔잔한 감동에 나 자신이 온전히 잠기도록 말입니다.


그 정도란 말인가. 가까운 서점에 들러 바로 책을 샀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다독가인 아내에게 말을 붙여봤다. 평소 아내는 책 좀 읽으라고 나를 구박하는 잘난 척 대마왕이기도 하다. 이제 나도 책 좀 읽는단 말씀!


“여보, 혹시 이 책 읽어봤어? 『당신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까르르 웃는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아니, 못 읽어봤어. 아마 앞으로도 읽기 힘들걸.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은 읽어봤지만.”


아내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다시 웃음을 빵 터트렸다. 아내의 얼굴은 웃느라 빨개졌고, 내 얼굴은 창피해서 빨개졌다. 책 제목을 잘못 알 수도 있지, 그렇다고 저렇게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을 건 뭐람. 안 그래도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든 남편 기죽게......


정작 내가 부끄러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틀릴 수도 있단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틀릴 수 있는 건, 바로 당신, 당신이었다. 이 진심이 말실수인 척 세상에 나온 것 같았다. 웃는 아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미안했다.



숲속 현자의 정체


세계적인 대기업에 입사한 후, 스물여섯 살에 임원으로 지명된 재무 전문가. 이것이 숲속에서 17년간 수행한 사람의 이력이다. 오십 넘도록 임원은 고사하고 팀장 한 번 못 해 본 나로서는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진다. 그것도 글로벌 기업에서 인정받은 실력이니 돈 굴리는 머리는 틀림없이 비상한 사람일게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 좋은 머리를 썩히면서 숲속 사원까지 찾아간 걸까.


아직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일요일 오후였지만, 마음속에는 다가올 업무 때문에 불안이 가득해 가만히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다들 알 겁니다.


그럼요, 알다마다요. 그게 어떤 기분인지 제 오장육부도 알습죠. 특히 사업보고서를 공시하는 날이면 딱딱해지는 심장을 움켜쥐곤 했다. 떨어진 영업 실적에 실망한 투자자들의 불같은 전화에 유체이탈을 경험하기도 했다. 주주의 분노와 원망을 듣는 내 모습을, 나는 놀랍게도 사무실 천장에서 우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불쌍한 놈, 먹고 살려고 참 애쓴다......


숲속 수행자는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건강검진에서 대장암이 발견된 것도 아니다. 어느 날 그는 출근 준비를 끝낸 자신이 마치 연극 무대에 오르기 위해 분장한 배우처럼 느껴졌다. 회의 자료에 대한 불안과 의심,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일에 대한 허무감으로 떡칠한 내 모습을 나도 목격하곤 했다. 그러다가 아무리 버티고 버텨도, 해낼 수 없는 날이 온다. 아니, 아예 무대에 오르고 싶지 않은 날이 온다. 화장을 싹 다 지우고 모든 것에서 훌훌 떠나고 싶은 날이 온다.


그는 책을 읽다가, 무엇보다 소중하고 주목할 만한 가치를 발견했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 있다는 고요함이었다. 이 고요함을 찾기 위해 그는 귀동냥으로 알게 된 호흡 명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다. 경영진 회의, 저녁 메뉴, 여자 친구가 번갈아 가며 마음을 훔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번복할 수 없는 확고한 결정이 본능처럼 튀어나왔다.


앞으로 나아갈 때가 됐어.



고까짓 초능력


수업을 시작하면서 강사가 했던 질문이 생각났다. 여러분이 17년간 숲속에서 수행했다면, 어떤 초능력이 생기길 원하느냐.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내공에 감탄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그가 말한 초능력이다. 어떤 인터뷰에서 그는, 17년 승려 생활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 질문에 대충 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이렇게 대답했다.


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고작 그게 다야? 그게 무슨 초능력이야? 나는 크게 실망했다. 나도 머릿속 생각을 다 믿지는 않는다. 머릿속 생각에는 망상도 있고 헛소리도 있다. 그걸 다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정확한 데이터와 객관적인 근거, 확실한 논리, 그리고 애지중지 긁어모은 경험법칙과 딱 맞는 생각만 믿는다. 그렇다면 나도 이미 초능력자란 말인가!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 능력이 내가 생각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초능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초능력이란 평범한 능력을 넘어서는 특별한 것이다. 평범한 우리는 끊임없는 잡생각의 습격 속에 속수무책으로 산다. 나아가 우리 같은 범인은 그 생각이 곧 나 자신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상식에서 벗어났다.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이지, 내가 곧 생각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랬다.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액면 그대로 다 믿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이 옳은데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17년 수행한 저자의 진단은 달랐다. 내가 곧 생각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마치 호흡이 내 자신이 아닌 것과 같다. 호흡과 생각은 모두 평생 계속되지만, 의식적으로 계속 선택하진 않는다. 호흡을 진실이나 현실과 헷갈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도 진실이나 현실과 혼동해선 안 된다.


마음속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생각 자체를 통제하려고 무진 애를 써 왔다. 안타깝게도 그건 평생 숨을 참는 것처럼 불가능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고르고 골라 떠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고 나쁜 생각을 잡아 올릴 때마다, 얼마나 심하게 자책했었나!


저자의 말대로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다. 생각은 새처럼 내 머리 위를 마음대로 날아다닌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새가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건 막을 수 있다. 손을 몇 번만 휘휘 저어도 새는 둥지를 결코 틀 수 없다. 둥지를 짓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나쁜 생각이 깊이 뿌리내렸다면, 그건 내가 그만큼 허락했다는 뜻이다.



결정적 차이점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도 회사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저자가 느낀 불안, 초조, 의심, 긴장, 답답함은 나의 뼈와 살에도 켜켜이 쌓여 있다.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이면 그래도 좀 익숙해지지 않을까 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이를 먹은 사람은 그 사람만의 전쟁이 따로 있다.


휴전의 비법을 나름 찾아봤다. 템플 스테이, 명상, 독서 모임 등등 마음을 치유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좋다는 정보는 너무 많았다. 팔랑귀라 누가 효험을 봤다고 하면 일단 도전했다.


나와 저자의 결정적 차이점은, 퇴사였다. 저자는 마음의 소리에 따라 회사를 그만두고 태국에 숲속 사원까지 날아갔지만, 나는 퇴사만은 절대 안 된다고 다짐에, 각오에, 맹세를 더 했다. 사실 그동안 숱한 비책을 찾아 헤맨 이유도 퇴사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지, 결코 마음의 평안 때문이 아니었다. 진정한 내면의 회복 같은 배부른 소릴 할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셋이었다. 내 머리엔, 어떻게 하면 회사를 좀 더 오래 다닐 수 있을까 뿐이었다. 회사를 내 발로 나가는 순간 식충이, 패배자, 산 송장이 될 것이 뻔했다. 회사 생활 내내, 이런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자신을 견디기 힘들었다. 차이고 밀려 뒷방 늙은이가 되어 가는 중에도 회사, 오직 회사였다. 내 모습이 몹시 역겨웠다. 이런 불쾌함에서 빨리 벗어나라며, 나는 나를 더 세게 채찍질했다. 회사에 오래 다닐 수 있거나, 재취업에 유리한 그 무언가를 당장 내놓으라고 자신을 닦달했다. 이런 내 모습과 달리, 저자는 자신을 존중했다. 그는 자신을 조금 더 견디기 쉬운 사람, 편한 사람, 언젠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앞으론 일단 나 자신이 좀 더 견디기 쉬운 사람이 되는 거야. 내 본모습을 좀 더 편하게 대하는 사람, 내 생각에 지배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말이야.


그의 초능력은 빛난다. 자신을 갉아 먹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되려는 마음. 자신과 친구 맺는 능력이 초능력이 아니면 무엇일까. 아쉽지만, 나에겐 이런 초능력이 없다. 수천 번 되뇌이고 다짐해도,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누군가 절벽에 매달린 나의 손을 짓밟는 것 같았다. 나는 비명과 함께 끈질기게 중얼거린다. 회사 없이 나 혼자 어떻게 살란 말이냐. 그건 불가능해!


내려놓기는 어쩌면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일 겁니다.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생각이 결국엔 우리에게 가장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들여다보길 바랍니
다.



말짱 도루묵


우습게도 나는, 내려놓기를 잘하기 위해선 무엇인가를 더 올려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성비 좋은 내려놓기가 어딘가에 있으리라. 다시 마음이 바빠졌다. 그러다가 108배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잠들기 전에 108배를 하면, 마음은 물론 몸도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엔 만족스러웠다. 앉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땀구멍이 열리고, 마음도 열렸다. 절 한 번에 묵주 한 알을 옮기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러다가 마음 내려놓기 장인이 되면 어쩌나 오만방자했다. 3일쯤 되니, 몸 여기저기가 쑤셨다.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무릎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참고 했더니 결국 아팠다.


절을 하고 나서 몸이 아픈 건, 잘못된 자세 때문이란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그때 제대로 절하는 법에 마음이 팔렸다. 고르고 고른 동영상을 보고 또 봤다. 그랬더니 이제 절을 할 때마다 화면 속 스님이 아른거렸다.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 합장한 손의 위치, 이마와 바닥의 거리, 일어날 때 발바닥과 발목의 모양, 절하는 속도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결국 명상은 꼬꾸라졌다.


저자가 생각났다. 내려놓기가 괜히 초능력이 아니구나 싶었다. 이런 능력을 가지 게 된 저자는 얼마나 좋을까. 이제 그 어떤 일이 생겨도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겠구나. 부러웠다.



다시 세상으로


역시 착각은 자유다. 난 아직 이 책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저자가 다시 세상으로 나온 후부터 발산된다. 그는 다시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에 이끌려 숲속 사원으로 온 지 17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는 마흔여섯 살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깊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제 집에 가야 할 때가 됐다고.


숲속에서 깨달은 초능력으로 저자는 세상에서도 잘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보란 듯 빗나갔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우울증이었다. 살면서 몇 번 겪기 어려운 극도의 불안감이 그를 짚어 들고 마구 흔들었다.


다시는 여자 친구를 사귀지 못할 거야. 가족을 이루지도 못할 테고. 직장을 구하지 못할 텐데 집이나 차를 살 여유가 생기겠어? 아무도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 않겠지. 영적 성장을 위해 17년 동안 공을 들였는데, 겨우 이 모양 이 꼴이로군.


눈을 의심했다. 이런 걱정은 너무나 평범한 것이지 않은가. 수행을 떠나기 전과 뭐가 다른가. 내려놓음의 초능력은 어디로 간 걸까. 도대체 17년간 뭘 한 건가. 혹시 그의 깨달음은 모두 거짓이었던가! 저자는 고백한다. 너무 우울하고 불안해서, 무려 18개월 동안 방에서 나올 수 없었다고.



진짜 초능력


나는 저자가 겪은 혼란과 불안 그리고 우울에 조심스럽게 나 자신을 포갰다. 나 역시 나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젊음과 정열을 바쳤던 회사와 형제 같던 동료들이 언제 그랬었냐는 듯 등을 돌리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그들의 말 한마디, 시선 한 줄이 당신은 누구냐, 당신은 여기 왜 있는지를 경멸하듯 집요하게 물었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이 말을 신경안정제처럼 삼켰다. 무기력과 허무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사람 마음에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18개월 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한 사람. 그라고 왜 해가 뜨고 지는 걸 몰랐겠는가. 커튼이 밝아올 때마다 남모를 고통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커튼을 헤집고 들어오는 찬란한 햇빛은 그에겐 메두사의 얼굴과 같지 않았을까. 그때마다 그는 돌처럼 굳어졌을 것이다. 눈은 딱딱해지고, 심장은 느려졌으며, 위장은 멈췄을 것이다.


17년 동안 자신을 둘러쌌던 목탁 소리, 향 내음, 알싸한 공기는 깊은 바다에 잠긴 유물이 되었다. 이곳 세상에선 그 모든 게 허무맹랑한 신화처럼 느껴졌다. 그 긴 세월이 모두 후회와 실망으로 쪼그라들었다. 호흡에 집중하려 할 때마다 짜증이 먼저 났다. 그는 얼마나 잔인하게 자신을 저주했을까. 수행의 무력함에 그는 얼마나 치를 떨었을까. 제대로 배웠다고 자부했던 내려놓음은 얼마나 초라한 것이었나.


혹시 그는 스스로를 깨달은 사람으로 박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자신을 가족들에게 떡 하니 보여주고 싶진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렇게 나약한 자기 모습을 들킨 기분은 또 얼마나 비참했을까.

캄캄한 방에서 그는 매일 같이 물었을 것이다. 나를 여기서 당장 구원해 줄 사람은 어디 있을까. 나를 붙잡아 줄 참스승은 어디 있는가. 가부좌 튼 자세로 벽을 보면서 구원자와 스승을 찾고 또 찾지 않았을까. 만약 초능력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런 때 그 힘을 발휘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불안감은 제가 아는 한 가장 가혹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영적 스승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전혀 다른 생각이 찾아왔다. 불안이 가장 훌륭한 영적 스승이다! 진정한 평안은 자기 내면으로 도망치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흔들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 있었다. 길고 긴 방황 끝에 저자는 진짜 초능력을 얻었다. 그는 자기 모습을 솔직하게 세상에 드러냈다.

그렇게 망가진 채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던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진 않는다. 여전히 그의 내면엔 우울증이 남긴 상처가 욱신거렸다. 혼란도, 불안도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향해 눈을 떴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자 영혼이 치유되는 것 같았고, 다시 조금씩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초능력이다! 내가 꾸며낸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슈퍼맨은 나 자신뿐이다. 나는 시대를 초월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오랜 수행이 말해 준 지혜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혜의 빛은 말한다. 가족과 세상에, 여전히 불행하고 혼란스러운 너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들려주어라. 그럼에도,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되고 있음을 그들에게 증언하라.


그 빛은 늘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한결같은 신호를 보냅니다.
“모든 것이 원래 되어야 하는 대로 된다, 항상. 우주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나는 틀릴 수 있지만, 우주는 틀리지 않는다. 나는 이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데도, 오히려 마음은 옳은 길을 찾은 듯 단단해졌다. 나 대신 누군가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 적절한 때에 삶을 챙기고 생명을 돌본다. 이 사실에 마음은 오래간만에 푹 쉬었다. 불안은 우주와 나 사이를 조율했다. 우주와 연결된 나에게서 단아한 소리가 났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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