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시대의 가장 견고한 서재를 가졌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교수, 변호사, 회계사,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진짜 전문가로 여겨졌던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자격증과 학위라는 단단한 세계 안에서 자신들의 지식 권력을 공고히 해 왔습니다. 복잡한 법전을 해석하고, 회계 원리에 따라 회계 장부를 분석하며, 고도의 코드를 설계하는 일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자 인간지능의 정수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이 정수를 크게 흔들고 있습니다. 한때 공부의 끝판왕이라 불렸던 변호사들은 이제 법무 AI (LegalTech)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단 몇 초 만에 계약서와 수많은 판례를 분석해 위험 조항을 표시하고 소송 문서 초안을 작성하는 AI 앞에서, 신입 변호사들이 담당하던 반복 업무의 상당 부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회계사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숫자의 오류를 잡아내고 세법을 따지는 여러 과업에서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다는 평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AI를 창조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업계마저 안전하지 않습니다. 여러 빅테크 경영진은 “단순 코딩은 AI가 더 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반복적인 코드 작성과 수정 업무는 이미 AI 도구에 상당 부분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식 시장에서 항상 상위를 지켜왔던 대학교수 역시, AI가 쓴 논문 초안과 강의 요약 서비스 앞에서 더 이상 지식 전달자의 역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들이 느끼는 공포의 본질은 단순히 수입의 감소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지식의 가치는 곧 자신의 존재 의미이기도 합니다. 데이터의 통계적 결괏값이 그 지식과 경험을 더 저렴하고 빠르게 대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문가들은 실존적 허무와 불안을 느낍니다. 이들이 붙들고 있는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은, 돈키호테가 기사에게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반박합니다. AI는 맥락과 책임을 모른다고. 이 말은 분명 옳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맥락과 책임보다 수익성과 효율성을 더 가치 있게 봅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우아하지 않습니다. 지식인들이 서재 안에서 진정한 지식과 인간성을 논하는 순간에도, 서재 밖 현실은 가성비 좋은 AI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기술 사이에서 길을 잃은 지식인들, 이것이 바로 한물간 소설에 빠진 21세기판 돈키호테일지도 모릅니다.
돈키호테를 미치게 한 것은 책이 아닙니다. 오늘날 지식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 역시 AI 그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목적과 도구를 조율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돈키호테는 세상을 소설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고, 지식인들은 자신의 과거 성과에 갇혀 성벽 밖에서 일어나는 지각변동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둘 모두 ‘자기답게 산다’는 삶의 근본적인 목적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AI 시대에 인간 소외는 정보의 과잉이 아니라 판단의 외주화와 책임 회피에서 비롯됩니다. 이제 단순히 답을 아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답은 AI가 더 싸고 빠르게 내놓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전환기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생존전략은 무엇일까요?
첫째, 자신을 지식의 소유자에서 맥락의 해석자로 바꿔야 합니다.
과거에는 정보를 독점하고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지적 권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지능은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AI가 쏟아낸 수많은 데이터 중 ‘지금 나에게 유효한 것은 무엇인가’를 묻고 선택해 자기 삶에 적용하는 실천적 지혜를 뜻합니다. 변호사는 판례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의뢰인의 삶이라는 맥락 안에서 법적 정의를 재해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개발자는 코드를 짜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과 사회가 만나는 접점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기술적 숙련을 넘어 윤리적 결단을 내면화해야 합니다.
AI는 확률을 계산할 뿐,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계산은 AI가 하더라도, 그 결과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서명하는 것은 결국 인간입니다. 인간은 선택하도록 저주받은 존재입니다. 전문가의 가치는 이제 그 마지막 클릭에 따르는 무게를 견디는 데서 나옵니다. AI가 도출한 법적 결과에 책임을 지고, AI가 제안한 치료법에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는 최종 결정권자로서의 태도가 이제 인간에게 요구되는 능력입니다.
셋째, 서재를 부수고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권위를 연구실과 사무실 안에서만 찾는 사람은 도태될 것입니다. 돈키호테의 비극은 서재에서 배운 세계관을 현실과 부딪히면서도 고치지 않은 채 길을 떠났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AI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서재 밖으로 나가, 끊임없이 현실과 부딪히며 자신의 지식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합니다. 인생은 불평과 불만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삶은 현장에서 문제와 직접 부딪혀 얻은 질문과 해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돈키호테는 비쩍 마른 노새를 명마라고 여기면서 길을 나섭니다. 남들이 보기엔 미친 짓이었지만, 그에게 그것은 무너져 가고 있는 세상의 무질서와 싸우기 위한 필사적인 자기 구원이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완전히 잃어버릴 때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자 스스로 떠나곤 했습니다.
돈키호테는 우리에게 예방주사입니다. 그는 시대 전환기에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AI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릅니다. 생계가 걸린 문제는 불안과 공포를 몰고 옵니다. 역설이지만, 지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나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음 해야 하는 일은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은 정말 옳았나?
모든 전환기의 적응은 언제나 이 질문에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