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는 왜 서재에서 미쳤을까-1

by life barista

돈키호테가 던지는 질문


오래전부터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불려 온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이 이야기는 스페인 라만차 지방의 한 하급 귀족, 알론소 키하노의 기이한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특별히 악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는 한물간 기사의 이야기 속에 파묻혀 살고 있습니다.

용감한 기사가 악한 용을 물리치는 소설을 사기 위해 그는 가문의 기름진 땅 수십만 평을 미련 없이 팔아치웁니다. 책을 읽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낮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습니다. 그의 머리는 온통 책에서 읽은 마법, 결투, 전쟁, 연애, 고난 따위의 환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기사, 고귀한 여인을 향한 사랑,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결투 이야기에 그는 삶의 의미를 느낍니다. 그렇게 식음을 전폐한 채 소설 읽기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는 마침내 살짝 미칩니다.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죠.


그에게 서재는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불확실한 현실을 막고 행복한 과거를 재생하는 가상 세계입니다. 기사도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는 별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가 책과 현실을 혼동한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소설은 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세상은 중세에서 근대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신의 계시보다 상업적 계산에 더 마음을 뺏겼습니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각양각색의 신기한 물건들이 시장에서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빠르게 변했지만, 그의 서재 속 세계는 여전히 단순하고 투명했습니다. 옳고 그름이 분명했고, 노력하면 마땅한 보상이 주어졌으며, 용기를 내면 모두 존경을 표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이 인물을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있지만, AI 시대를 코 앞에 둔 우리 입장에서는 마냥 웃을 수 없습니다. 『돈키호테』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시대 전환기 인간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데도,
여전히 과거 방식 그대로 살고자 하는 인간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돈키호테』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또한 이것이 400년 넘은 오늘날까지 이 책이 읽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재의 의미


돈키호테가 서재에 틀어박혀 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바깥 현실은 의미와 가치의 재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사보다 상인이 중요해지고, 명예보다 돈이 앞서며, 충성보다 계산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믿고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서재는 달랐습니다. 돈키호테에게 서재는 단순한 피난처가 아닙니다. 그곳은 그에게 익숙한 세계의 법칙을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습니다. 현실에서 기사도는 이미 힘을 잃었지만, 서재 안에서만큼은 여전히 부와 명예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소설은 여전히 과거의 질서에 따라 편집되어 있었습니다. 정의는 정의로 보상받았고, 악은 악으로 처벌받았습니다. 노력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도 명확했습니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현실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대신, 익숙한 세계로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이 선택이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를 매우 현대적인 인물로 만듭니다. 왜냐하면 지금 AI 대전환기에도 많은 현대인이 돈키호테처럼 익숙한 것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 서재는 안전한가


오늘날 우리의 서재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속에 있습니다. 검색창, 요약 서비스, 인공지능 대화창이 책을 대신합니다. 이 새로운 서재는 돈키호테의 서재보다 훨씬 친절합니다. 질문하면 바로 답을 주고, 긴 글을 읽지 않아도 핵심을 요약해 줍니다.


언론들은 검색의 시대가 가고, 생성의 시대가 왔다고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지식은 찾는 것이 아니라 AI에게 물어보는 것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의 70% 이상이 전공 서적을 정독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AI 요약본에 의존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그 비중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사유의 고단함은 생략되고 말끔한 결론만 남는 액정. 이것이 바로 21세기형 서재의 풍경입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SF 고전 『화씨 451』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책을 읽는 것이 범죄가 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거대한 스크린과 말초적인 자극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지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이 디스토피아에서 확고한 진실의 자리를 차지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지 말아라.
생각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그들이 행복해지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건 정보를 주입해서 그들이 스스로 똑똑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AI 서재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방대한 정보에 빠르고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전혀 모르는 외국어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간단하게 번역해 쉽게 해설해 줍니다. AI는 정보의 양과 처리 속도 면에서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지만, 결코 지치거나 짜증 내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AI 서재는 많은 사람에게 해방과 희망을 줍니다. 더 이상 공부 때문에 좌절하지 않아도 되고, 지식의 문턱도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광기가 시작될 가능성도 함께 생깁니다.


오늘날 우리가 AI가 던져주는 매끄러운 요약본에 감탄하며 스스로 지적인 존재라고 착각하는 모습은, 『화씨 451』의 소방관들이 꿈꿨던 ‘생각하지 않는 행복’과 얼마나 다를까요? 스마트폰 속 AI는 재래식 지식 권력을 무너트려 우리를 해방했지만 동시에 우리를 다른 소설 속에 파묻힌 돈키호테로 만들고 있진 않습니까?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