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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Sep 29. 2021

고생 끝에 명퇴 온다

- 6번째 책,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해외주재원 이팀장의 한숨     


점심 식사 후 나른한 오후. 전화가 짜증스럽게 울렸다. 인사본부장이었다. 잠깐 자기 방으로 오란다. 딱 3년이라고 했다. 3년은 베트남에 새로 생기는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건설과 시범 운행에 필요한 기간이었다. 회사가 제시한 해외주재원의 연봉은 지금 받는 금액의 두 배가 넘었다. 귀국하면 회사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을 외국인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급하게 기울어졌다. 많은 돈과 밝은 미래 그리고 아이들 영어교육까지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섬광처럼 짧게 빛났다.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이번 베트남 프로젝트가 잘되면,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같은 공장을 세울 계획인데, 아무래도 1기 베트남 맴머들이 경험이 있으니 계속 선발대 역할을 맡게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잘하면 동남아시아에서 정년퇴직할 수 있겠다는 농담에 이팀장은 웃을 수 없었다. 그 말인즉슨, 아이들은 때가 되면 대학입시 때문에 아내와 함께 귀국해야 하고, 결국 자신만 혼자 남아 타국살이를 오랫동안 해야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나이든 중년 남자가 혼자 외국에서 사는 게 말처럼 쉽지 않고, 실제 이혼한 경우도 적지 않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아내는 반대했다. 우선 아이들 걱정이 컸다. 첫째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3년이면 중학교 진학과 겹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첫째와 다섯 살 터울인 둘째는 이제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응석받이 막내다. 요 어린 것이 덥고 습한 베트남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내 자신도 문제라고 했다. 남편은 회사에 가면 지금처럼 없는 사람 취급해야 한다. 게다가 해외 공장 건설이 어디 쉬운 일인가? 밤낮없이 바쁠 것이다. 아무래도 아이들 교육이며 살림살이는 한국에서처럼 독박을 써야 하는데,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이국땅에서, 친정 엄마의 도움도 없이 혼자 잘해나갈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날만 했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단절된 경력을 다시 이어나갈까 이런저런 자격증 공부와 진학 등을 고민해왔던 아내로서는 갑작스런 해외주재원 생활에 박수칠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내는 마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어두컴컴한 산속으로 아이 둘과 함께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이팀장은 동남아시아 이곳저곳을 떠돌게 될지도 모른다는 재수 없는 소문은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7년이 지났다. 이팀장은 여전히 베트남에 있다. 3년이 지나 귀국할 시점에 과장에서 팀장으로 승진했다. 신임 팀장이 공장 현지화가 완료될 때까진 있어 줘야 하는데, 이과장이 아니면 누가 하겠냐며 그가 최적임자라고 다들 잔뜩 추켜세웠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함께 왔던 1기는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그보다 3년 늦게 왔던 2기도 작년 말에 돌아갔다. 큰 애는 고3이 되었고, 매일 징징대던 막내도 중학생이 되었다. 여름 방학을 맞아 베트남에 왔던 아내의 말이 자꾸 걸린다.      


”아빠 없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이제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있는 생활을 어색해해.“          



돌아오면 명퇴 대상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본사 인사팀장에게 귀국을 요청했다. 인사팀장은 이팀장이 아끼는 입사 한 해 후배다. 인사팀장은 난처해하면서도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형님, 서운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금 돌아오시면 바로 명퇴 대상입니다. 이제 현지 법인장이 바로 코앞인데, 저 같으면 조금 더 참겠습니다.“  

   

안 그래도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걸 형도 잘 알지 않느냐,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아예 문을 닫는 게 나을 지경이다, 말만 명예퇴직이지 과거와 비교하면 불명예 퇴직과 다름 없다 등등 인사팀장은 조언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을 끝없이 덧붙였다. 그의 진심은 짧고 분명했다. ‘버텨라, 그게 남는 거다.’   

  

순간 이팀장은 불같은 배신감에 휩싸였다. 3년만 참으면 승승장구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2배가 넘는 7년을 견뎌냈는데 명퇴 대상이라니 배신감은 당연한 감정이었다. 조금 더 참아라? 그러면 법인장이 된다? 그걸 지금 믿으라는 건가? 날로 심해지는 우울증은 어쩌란 말인가? 아빠 없는 시간이 더 좋다는 아이들과 앞으로 어떻게 지내란 말인가? 이제 서운하다고 말할 힘조차 없는 이팀장의 마음은 한여름 아이스크림처럼 흉하게 흘러내렸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 마음이다. 마음 한구석에선 달콤한 속삭임도 쉬지 않고 들려왔다. 현지 법인장은 임원이다. 임원이 된다는 건 군대로 치면 계급장에 별을 다는 것, 즉 장군님이 되는 것이다. 임원은 모든 회사원들의 꿈 아니던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 많았나? 이제 와서 내가 남편이다, 아버지다 큰 소리치며 간다 해도 과연 가족들이 따뜻하게 맞아줄까? 지난 세월을 되돌릴 수 있을까? 인사팀장 말대로 조금 더 버텨서 개선장군이 되는 게 남는 장사 아닐까? 그런데 어깨에 별을 달면, 내 삶도 반짝반짝 빛나게 되는 걸까? 반짝이는 내 얼굴 뒤로 가족들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돌아가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후회와 함께 베트남의 밤이 깊어갔다.      


이팀장이 아무도 모르게 항우울제를 먹은 지는 3년이 조금 넘었다. 길어지는 타국살이와 많아지는 나이는 몸과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흰 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많아지고, 눈은 침침해졌다. 기억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고, 자신감은 기억력보다 빨리 떨어졌다. 통증은 머리, 어깨, 허리를 유랑하더니, 이젠 마음에 눌러앉았다. 칼 같던 업무처리는 크고 작은 실수로 뭉툭해졌다. 입맛도 살맛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모름지기 세상살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버틸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팀장은 요즘 매일 깨닫는다. 그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관습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이유를 뼈저리게 배웠다. 그 어떤 속셈도 없이 서로의 존재만으로 미소짓게 만드는 관계 속에서 사람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깨진 유리처럼 불안했던 자신을 무조건 안아주던 아내가 이팀장은 한없이 그리웠다. 아빠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에게 달려와 안겼던 아이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그는 사랑스런 가족과 너무 멀리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다. 가족 없이 견뎌야 하는 타국생활은 이팀장을 양철 인간으로 만들었다. 우울증은 송곳처럼 그의 심장을 집요하게 후벼 팠다. 결국 양철 심장에 구멍이 났고 거기서 을씨년스러운 바람 소리가 났다.     


이팀장은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소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내가 보낸 영양제와 몇 권의 책이 있었다. 책 중에는 철학이 자신의 영혼을 쉬게 한다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했던 회사 선배가 보낸 것도 있었다. 그 책은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었다. 이 책이 내 영혼도 쉬게 해줄까, 빈정거리면서 이팀장은 책을 폈다.



인간의 조건?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일까? 이팀장은 책을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그는 한나 아렌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은 적이 있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가스실에서 수백만 명의 유태인들을 학살한 장본인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특파원 자격으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직접 참관했다. 그녀가 경악했던 것은 아이히만이 옆집 아저씨처럼 너무나도 평범했다는 사실이었다. 수백만 명을 죽인 사람의 머리엔 악마의 뿔이 없었다. 그의 엉덩이에는 짐승의 꼬리도 없었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왜소한 개인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악의 평범성에 놀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 비극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한나 아렌트는 자기 일을 하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하는 사고력의 결여라고 말한다. 이팀장은 이 말에 적지 않게 놀랐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일해 왔던 그는, 사실 이 일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밥벌이는 신성하다’, ‘목구멍이 하나님이다’라는 신념으로 묵묵히 시키는 대로 그냥 했던 이팀장에게 한나 아렌트는 묻는다.     


우리가 활동할 때 우리가 진정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진짜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의 결여가 악마성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이팀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파격적인 주장은 계속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과학과 기술에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전체주의적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전체주의적 경향은 통제될 수 없는 부분까지 통제되게끔 억지로 묶고 끌어당긴다. 이러한 통제에는 폭력과 강요가 따르기 마련이다. 과학과 기술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신념은 불가능한 영역을 가능한 것처럼 조작한다. 이러한 조작에는 허상과 위선이 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근본적인 악마성은 과학과 기술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거짓 신념에 있다고 한나 아렌트는 보았다. 전체주의적 요인은 정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팀장이 베트남에 온 이후는 스마트 팩토리를 건설하기 위해서다. 스마트 팩토리는 고객이 언제 어디서 주문을 하던지 주문 즉시 작업이 시작되도록 설계된 공장을 말한다. 모든 자재와 설비는 시스템으로 실시간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라곤 시스템을 점검하는 극소수의 엔지니어이다. 실제 재료를 붓고 빚어 디자인에 따라 제품을 만드는 것은 로봇 팔이 한다. 포장과 물류까지 사람의 노동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사람이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스마트 팩토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객이 언제, 어디서, 어떤 색깔과 모양으로 주문을 하든 주문한 그대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스마트 팩토리에는 깔려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체주의적 경향이 이 똑똑한 공장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팀장은 공장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시스템은 자신을 만든 인간을 닮았다. 인간은 수많은 실패를 통해 조금씩 배워 나간다. 시스템 역시 고장과 오류를 먹으면서 점차 나아질 뿐이다.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완벽한 시스템도 없다. 다만, 완벽하다고 믿거나 믿도록 속일 뿐이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이러한 과학과 기술에 대한 과잉 믿음은 인간의 조건의 핵심인 ‘지구’를 거대한 실험실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은 실험도구나 실험대상이 된다. 실험이란 자연스런 상태를 용납하지 않는다. 가설에 맞는 조건을 설정해 놓고 끊임없이 조정하고 수정해서 동일한 결과 값이 나오도록 조작한다. 또한 과학과 기술의 시대는 인간의 노동을 끊임없는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으로 노동, 작업, 행위를 제시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나 아렌트에게 노동이란 생계만을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생계는 먹고사는 문제다.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다. 생계가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생계에 목을 맨다. 생계 불안이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은 생계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러한 포기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자신과 서로를 속인다. 고대 그리스 등에서 노예에게 정치적 투표권을 주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계만을 위해 사는 노예에게 보다 높은 정신적 가치를 목표로 하는 정치적 결정을 맡긴다면, 생계가 최고라고 믿고 결국 자신과 공동체를 속이는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체 국민에게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나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노예에겐 항상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팀장은 여기에 맞설 자신있는 반론이 생각나지 않았다. 생계만을 위한 활동을 노동이라고 할 때, 자신이 지금껏 회사원으로 해왔던 활동 전체는 노동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거대한 명분 아래서 가족과의 친밀한 시간을 수년간 포기했다. 직원들과의 면담도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한정되었다. 대주주의 친인척이 낙하산으로 왔을 때도 참았다. 낙하산들은 전문성이 전혀 없었지만, 이팀장은 이에 대해 침묵했고,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검토한다고 했지만, 결국 내 호주머니 불려줄 사람, 내 세금 깎아줄 사람, 내 집값 올려줄 사람을 고르고 골랐다. 보다 나은 나라,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내놓을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이걸 합리적인 시민이라고 해야 할지, 이기적인 돈의 노예라고 해야 할지 이팀장은 답답했다. 이팀장에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진인사대생계(盡人事待生計)였다. 생계보다 더 센 삶의 의미를 그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팀장은 계속 읽어나갔다. 한나 아렌트는 ‘사회’가 출현하면서, 사회 안에 가족으로 대표되는 사적 영역과 정치로 대표되는 공적 영역이 애매하게 뒤섞인 것을 날카롭게 분석해 냈다. 아주 오랫동안 사적 영역은 가부장의 권위와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왔다. 반면 공적 영역은 토론과 설득을 통해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과 기능을 그 중심에 두었다.  

    

그러나 근대의 출현과 함께 나타난 사회는, 이러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혼재되어 결국 경제문제를 공동체의 최우선 과제로 부각시켰다. 이로 인해 사회에서는 가부장적인 권위와 노예제도가 함께 작동하게 되었고, 사회의 구성원들은 경제문제를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즉, 국가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대한 유기체가 된 것이다. 사회 안에서 인간은 더 이상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주체가 아니라, 가부장적 권위를 모방한 사회적 권위에 순응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의존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 팀장은 끊임없는 생산의 자동화 과정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기보다, 오히려 인간을 세계와 이웃으로부터 소외시킨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에 무릎을 쳤다. 스마트 팩토리라는 거대한 자동화 공장은 이 팀장을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생계를 염려하는 노동자로 만들었다. 주문과 생산이 실시간으로 연결된다는 꿈은 어떤 사람에게는 항상 실시간으로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베트남의 자연과 문화를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프로그램 오류 알람은 스마트 워치를 통해 감전된 것처럼 온몸으로 전달되었다. 기후변화나 인권 등 경제와는 다른 가치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그에겐 전혀 없었다. 그저 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높은 곳에 두고, 다른 문제들은 생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따라 서열이 매겨졌다. 짐짓 조금이라도 깊은 사유가 시작되면 배부른 소리한다며 스스로를 타박했다. 사유는 생계 앞에서 군말 없이 멈추어 섰다.     



독재자들의 야망     


이 팀장은 정신을 차렸다. 지금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는 진지하게 되물었다.   

        

‘나는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임금노동자다. 이런 내가 생계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잘못인가? 모든 생각이 생계 안정을 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사실 내가 실직하면 누가 나와 가족들을 보살펴 줄까? 이 냉정한 사회에서 누구 하나 우리 가족을 거들떠보기나 할까?’  

        

이런 든든한 반대 논리로 재무장하고 나서 이팀장은 다시 책을 읽어 나갔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이팀장은 아래 문단에서 자신의 논리가 무장해제 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에서 모든 독재자들의 야망은 시민들이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고 비생산적인 공론과 정치로 시간을 허비하지 못하게 하며,
동양의 전제군주제의 바자(bazaar, 시장)와 비슷한 가게들의 집합소로 아고라를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이팀장은 어리둥절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비생산적인 공론과 정치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뜻인가? 비생산적인 것은 그 어떤 짓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한나 아렌트는 지금 무슨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는 걸까? 그는 천천히 그녀의 주장을 연결해 봤다.       


악의 근본적 원인은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건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 목숨 챙기는 데만 급급하단 의미다. 자기 생계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경제를 넘는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생계, 효율성, 생산성, 수익률 따위에 연연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활동을 한나 아렌트는 '행위'이라고 부른다. 행위의 가장 대표적인 영역은 바로 정치다. 정치? 아, 정치......           


 

인간 조건의 핵심, 생각의 자유!          


한나 아렌트는 노동 이외에도 ‘작업’과 ‘행위’를 인간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이팀장은 책을 읽어가면서 작업과 행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작업’은 최종생산물을 목표로 삼는 활동이다. 따라서 작업의 모든 것은 최종생산물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적절하고 쓸모 있느냐로만 판단된다. 한편, ‘행위’는 생계에 묶인 노동이나, 최종생산물에 집착하는 작업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들을 이웃과 나누는 활동이다. 노동, 작업, 행위로 나갈수록 인간이 보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다.     

      

생존에 꽁꽁 묶인 노동과 최종결과물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작업에도 물론 인간의 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보기에 노동과 작업은 진정 자유로운 인간의 사유라기보다는 상품화되고 평가절하된 것에 불과했다. 인간 사유의 특징 중 하나는 자유다. 사람의 뜻과 생각은 몇 마디 마른 설명으로 해명될 수 없다. 주머니 속 동전처럼 가지고 놀 수도 없다. 힘찬 물줄기처럼 거침없이 흘러나가는 인간 정신의 거대한 폭포를 한나 아렌트는 역사의 현장에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 정신의 거대한 폭포를 보지 못한 자 중 누군가는 유독가스 밸브를 아무 생각 없이 열 수도 있다는 걸 우린 목격했다.       

   

이런 관점에서 한나 아렌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간의 조건은 바로 ‘행위’다. 인간 정신은 아무것도 방해할 수 없는 자유를 향한다. 그 자유를 통해서 인간은 결국 자기만의 생각을 갖게 된다. 다른 누구와도 동일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게 되는 출발은 바로 자기만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자기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때, 그 사회는 비로소 다양성이라는 놀라운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떤 누구도 지금껏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다른 누구와 동일하지 않다는 방식으로만 우리 인간은 동일하다.
이 때문에 다원성은 인간 행위의 조건인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진정 자유로운 생각들이 반드시 정치 영역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는 한 개인이 자신의 이익과 입장을 넘어서서, 공동체적 관점에서 자신의 개성과 자유를 펼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기도 하다. 생계를 넘어서는 가치, 돈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토론과 설득의 과정은 우리가 함께 모여 사는 근본적인 이유를 묻고 탐구하도록 만든다. 이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인간의 조건 중 가장 큰 것을 잃어버린 셈이다.               


정치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이팀장은 정치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활동을 통해 재산을 늘리고자 한다면, 그것은 생계를 위한 노동일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정치는 밥 벌어 먹기 위한 직업적 정치가 아니다. 그녀에게 정치는 공동체와 이웃을 향해 말하고 행동하는 활동이다. 여기에는 한 사람의 인격이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드러난다. 같이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 이웃과 함께 국가, 공정, 정의, 자유, 평등 나아가 행복을 이야기하는 공적 활동이 바로 정치인 것이다.     


이팀장은 자신이 우울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베트남 공장은 오직 경제 활동으로서만 남아 있었다. 이곳은 돈의 사막이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뙤약볕처럼 내리쬔다. 여기서 버틸 수 있도록 만드는 오아시스는 생계 안정뿐이다. 그나마 그걸 확인시켜 줄 수 있는 가족마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울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돈 이외의 가치를 가슴에 담을 수도 없었다. 근로자들의 정신 건강이나 베트남 노동자들의 인권 등은 공장에선 사용할 수 없는 금지어였다. 어쩌다 반인권적인 상황과 마주치게 되면,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야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 월급쟁이 주제에 뭘 할 수 있다고 나서나. 이팀장은 얼른 꼬리를 내리곤 했다.         

 

이팀장은 책을 덮고 생각했다. AI, 스마트팩토리, 메타버스 등 기술과 결합된 상품들이 독재자처럼 우리 삶을 지배하는 오늘날, 자신이 무엇부터 해야 할지, 과연 그것을 해낼 수 있기나 한 건지 답답했다. 시민이 되지 말고 소비자가 되라, 국민이 되지 말고 고객이 되라는 곳은 더 이상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따뜻한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그런 냉골에서 교육받고 평생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마저 얼어  붙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 이팀장의 가슴 한쪽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돈 버는 일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어떤 것들은 자신이 그동안 전혀 하지 않았다는 자책도 들었다. 머리카락이 칼처럼 섰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국가와 이웃 속에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나와 공동체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아이들과 나누는 것이었다. 이팀장은 이런 주제를 놓고 아이들 그리고 아내와 토론하고 싶어졌다. 가족 안에서 출발해 이웃과 국가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땅에 박혀 있던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이제라도 제 앞길만 살피는 공부와 일에서 벗어나, 조금 큰 생각들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졌다. 우리가 무슨 일을 어디서 하든,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하게 되어 있다.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된 모습으로 살게 되어 있다. 이팀장은 이런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서, 저녁 식탁에서 하고 싶어졌다. 밥줄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거짓 협박에 속아,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가족들을 등진 채 더이상 돈의 사막을 혼자 걷고 싶지 않았다. 이팀장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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