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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Oct 01. 2021

저래서 여자를 뽑으면 안 된다니까

- 7번째 책,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경단녀의 비명     


유과장은 경력단절이라는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뛰어넘었다. 대학 때는 남학생들을 줄줄 달고 다니는 퀸카였다. 대기업에 단번에 철커덕 합격했다. 팀에서 성과평가도 가장 높았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에 좌중을 휘어잡는 프리젠테이션 실력까지 어느 한 군데 흠잡을 곳이 없었다.  장래 총망 받는 인재라는 수식어가 필요한 단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직원들은 주저 없이 유과장을 추천했다.     


그러나 유과장도 그놈의 사랑에 발목을 잡혔다. 아홉수에 걸리면 안 된다고 백일 불공을 드린 어머니 성화에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 중매를 봤다. 불교의 인연인지 기독교의 예정인지 몰라도, 중매 상대방은 영화배우 열 받게 하는 눈부신 얼굴에, 모델 울고 갈 훤칠한 몸매, 게다가 부자집 외동아들-이게 함정-이었다. 자연의 섭리겠지만, 이런 대박 조건엔 내분비 호르몬까지 다량 분사돼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법이다. 여기에 사회 문화적 군불까지 후끈 피어오르면 영락없이 천생연분으로 탄생한다. 천하의 유과장도 천생연분을 만난 지 3개월 만에 청첩장을 돌렸다.     


혼한 다음 해 큰딸이, 그 다음 해엔 작은딸이 태어났다. 자기를 꼭 닮은 두 아이를 보면서 유과장은 너무 행복했다. 육아휴직을 연거푸 냈다. 회사에선 눈치가 살벌했다. 출산휴가 90일에다 유급 육아휴직 1년을 각각 두 번 사용했으니까, 모두 합쳐 2년 6개월이었다. 이렇게 쉬는 건 회사 최초라나 뭐라나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법에 있는 권리를 회사에서 내가 최초로 사용했다는 게 회사 자랑인지 욕인지 헷갈렸다.     


유과장이 뛰어난 인재란 사실은 여전히 유효했다. 유과장의 휴가 전후로 보고서 수준이 달라졌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렇지만 2년 6개월의 기간은 두 아이를 키우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회사 동료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리는 데는 충분했다. 결국 유과장은 남들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때려치웠다. 아이 둘을 예쁘고 바르게 키우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런 엄마 욕심에 따른 것이다. 대기업을 부러워하던 사람들 중 유과장표 엄마 욕심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는 그동안 꾹 참고 있던 말을 드디어 내뱉을 기회를 얻었다.


 “저래서 여자를 뽑으면 안 된다니까.”     


육아와 가사 모두 유과장이 독박을 썼다. 남편도 그 나름 뭔가를 했지만, 늘 도와주는 컨셉이었다. 부자집 외동아들은 정말 손이 많이 갔다. 일을 벌리고 키웠다.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시켜야 했다. 앓느니 죽지란 말을 이때 참교육 받았다.    


두 딸 모두 어엿한 여고생이 된 해, 유과장은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일을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자기소개서를 50군데 넘게 넣고 모두 떨어지자 청년 취업난을 실감했다. 90번쯤 떨어지자 경단녀라는 현실에 몸서리쳤다. 처음엔 대기업에서 쌓은 경력이 아깝다, 애들 학원비라도 보태야겠다, 이제 나만의 일과 정기적인 돈벌이를 가져봐야겠다, 뭐 이런 대충 뻔한 명분으로 버텼지만, 100번째 취업 실패는 자존감의 싹을 싹둑 잘라 버렸다. 우울하고 비참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침묵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남편이 잔뜩 눈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나만의 서재를 좀 갖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 박사논문도 마무리 짓고, 노후 대비로 책도 좀 쓰고 하려면 아무래도 방해 없는 조용한 서재가......“


”뭐라고?“


비명인지 발악인지 모를 고성이 남편의 말허리를 두 동가니 냈다. 그러곤 유과장 자신도 모르게 반쯤은 빈정대고, 반쯤은 혼쭐내는 대사를 내뱉었다.


”나만의 서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방은 세 개, 사람은 네 명     


숫자가 맞지 않았다. 성년인 여고생 둘의 몸은 자랄 대로 자라 방을 가득 채웠다. 이런 상태에서 계속 같이 방을 쓰라고 하는 건 학대일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둘이서 깔깔대고 웃다가 손잡고 다정하게 잠들 나이가 훌쩍 지난 것이다. 영장류의 영역 본능이 자매의 인연을 끊기 일보 직전이었다. 자매의 싸우는 소리가 거실을 지나 발코니를 넘어 주차하던 사람들이 두리번거리게 할 정도가 되었다. 이건 각자의 몸을 눕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싸이렌 소리였다. 유과장 부부 모두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덕분에 남편은 서재를 내놓아야 했다. 말이 서재지 1평이 조금 넘는 집에서 가장 작은 방이다. 게다가 계절 물건도 한자리 차지하는 창고 겸용 방. 남편은 애지중지했던 책들을 버리거나 팔았다.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 둘째 딸은 행복했고, 남편은 막내 방 꾸미기라는 사명감으로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간신히 감추고 있었다. 유과장이 남편의 심사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한편, 유과장만의 방도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입사 서류전형에서 몇 번 떨어졌는지도 까먹은 어느 날, 한 중소기업에서 합격문자를 받았다. 그것도 과장으로! 유과장은 엉엉 울었다. 이제 간신히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된 유과장으로서는 기대보단 두려움이 컸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오직 공부밖엔 없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가족이라고 하더니 다들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쁜 이기적 동물들. 이 와중에 다시 자기만의 서재 타령을 하는 남편. 유과장은 잔뜩 뿔이 났다. 그 뿔의 첫 희생자가 남편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각자의 방을 가지게 된 딸들에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선물했다. 나름 그 방이 갖는 의미를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게다. 그러나 예상한 대로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았고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았다.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유과장이었다.          



아내를 구타할 수 있는 남편의 권리     


『자기만의 방』은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에 대한 강연이다. 강연 요청을 받은 버지니아 울프는 고민에 빠진다. 여성과 픽션? 이건 여성이 쓴 픽션인가? 아니면 여성에 대해 쓴 픽션인가? 그녀의 결론은 다소 엉뚱하다. 그 결론이란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가상의 ‘나’를 등장시킨다. ‘여성과 픽션’이라는 강연을 준비하는 나는 대학 도서관에 들어가지 못한다. 관리인 왈, 여성은 대학연구원과 함께 오거나 소개장이 없으면 절대로 대학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이런 말도 안 되는 차별은 당시 영국 곳곳에 존재했다. 식사 때 남자들은 포도주를 마시지만, 여성은 물을 마신다. 남성은 탐욕적으로 부유하고, 여성은 비참하게 가난하다. 여성은 갖은 노력으로 노동하지만 돈을 소유할 합법적인 권리조차 없었다. 심지어 『영국사』에는 이런 기록까지 등장한다.     



아내에 대한 구타는 남성의 공인된 권리였고, 상층민이나 하층민이나 할 것 없이 자행했다. 부모가 선택한 신사와 결혼하기를 거부하는 딸을 방에 가두고 구타하며 내동댕이친다고 해도 전혀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다.    



유과장은 버지니아 울프가 왜 여성과 픽션이라는 강연을 자기만의 방과 정기적인 수입을 통해 풀어나갔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듯, ”픽션은 거미집과 같아서 아주 미세하게라도 구석구석 현실의 삶에 부착“되기 때문이다.


소설을 쓴다는 건 재능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소설을 쓰는 사람이 어린 시절 어떤 경험과 교육을 받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그리고 현재 소설을 쓸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과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지에 따라 소설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아무런 권리도 없는 여성, 15~16세에 결혼해 가사노동으로 늙어가는 여성, 남편의 구타를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여성, 이들이 과연 어떤 소설을 쓸 수 있는가?          



여성이 소설을 쓸 수 있는 재능을 갖는 건 불가능?     


한 주교는 신문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과거든 현재든 또 미래든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셰익스피어에게 여동생이 있었다고 가정한다. 그녀의 이름은 주디스다. 주디스는 오빠인 셰익스피어에게 뒤지지 않는 문학적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디스는 오빠처럼 문법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책을 읽을 수도, 사냥이나 말타기를 할 수도,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나 대화할 수도 없었다. 부모와 사회는 그녀의 삶을 철저하게 단속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일은 바느질과 국을 끓이는 일이었다.      


그녀는 좋아하는 연극을 하기 위해 오빠처럼 가출했지만, 오빠처럼 연극 단원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조롱거리가 된다. 쉼 없이 노력해 보지만 여자라는 선천적인 약점은 그녀를 동정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주디스는 극단 단장의 동정으로 먹고 살다가 그의 아이를 임신한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결국 자살하고 만다. 오빠와 대등한 문학적 천재성은 단 한 번도 그녀의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꽁꽁 얼어붙은 길모퉁이에 조용히 묻힌다.     


유과장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동안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경험했던 남녀차별은 ”원래 다 그런 거지.“, ”나 하나 참으면 조용히 넘어가는 일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별 탈 없이 사는데 나만 유독 유난을 떨까.“ 라면서 대충 넘길 일이 아니었다. 차별은 누군가에겐 삶을 스스로 끝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자기 몸에 새겨진 차별의 문신이 이제야 폭력에 의한 상처라는 걸 유과장은 깨달았다. 두 딸의 얼굴이 스쳤다.          



숙모님의 유산     


이렇게 어려운 현실 속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그녀는 ”숙모님의 유산은 내게 하늘의 베일을 벗겨주었고“,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것은 사실이었다고 고백한다. 숙모님께서 자신에게 유산을 남겨 주신 것이다. 남성이 시와 소설을 잘 쓸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그들에게만 부여한 천재성 때문만이 아니라, 물질적 환경이 주는 안정감도 그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숙모님의 유산은 그녀에게 알려 주었다.      


경제적 독립은 한 인간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물질적으로 종속되지 않은 생활을 1~2년쯤 하자 가장 커다란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바로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가 생긴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사유의 자유를 솔직하게 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가장 굴욕적으로 생각한 것은 가치를 측정하는 사람들의 규정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숙모님의 유산은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유과장은 다시 일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남편 월급에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은근히 자존심도 상하고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 둘을 낳고 키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 집안의 일원으로서 자격이 없지 않나 우울한 생각이 들곤 했다. 자신의 당연한 권리도 시집 식구들에게 자신 있게 주장하지 못했고, 친정 부모님껜 작은 것조차 흔쾌히 드릴 수 없었던 건 아마도 자신을 가난한 사람,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종속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마음 자세에서 어떻게 사람과 사물을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이건 남편과의 사이가 좋고 나쁨을 떠나, 한 인간이 자기 삶을 당당하게 살 수 있느냐와 맞닿아 있는 근본적인 문제였다.           



리얼리티 쓰기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새로운 회사와 업무에 대해 마냥 두려워할 일이 아니구나. 과거에 일했던 경험과 현재 일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일기를 써 볼까. 무엇보다 그 일을 하면서 내 감정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내 태도와 행동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기록하고 싶다. 이건 새로 태어난 나를 위한 육아(育我)일기, 즉 나를 낳고 키우는 매일의 기록이 될 거야.’ 


이렇게 소소하고 개인적인 것도 글이 될까 주저하고 있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권유가 큰 힘이 되었다. 유과장은 설렜다.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를 권할 때,
나는 여러분이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조언하는 겁니다.     


리얼리티에 직면하라! 편견과 차별로 얼룩진 인간관계에서 벗어나라! 내 몸과 마음이 생동감 넘치게 반응하는 현실과 직접 대면하라! 바로 이것이 살아있는 삶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간곡하고 강렬한 목소리가 유과장을 흔들어 깨웠다. 리얼리티와 대면한 일상들을 기록하는 일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과장은 거실을 서재로 만들자고 남편에게 제안했다. 제일 먼저 TV를 버렸다. 방송국에서 만든 리얼리티 쇼는 그만 보고, 내가 주인공인 진짜 리얼리티와 맞서고 그것을 쓰기 위해서다. 쇼는 이제 충분히 봤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다.     


다음 차례는 TV를 보기 위해 거실에 퍼질러 누워있던 소파를 치우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거실이 넓었다. 큰 책상을 놓을 수 있었다. 노트북도 이참에 새로 장만하고, 와이파이도 팡팡하게 업그레이드 했다. 시간을 정해서 안방과 거실을 각자의 서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안방도 정리했다.      


    

주디스는 살아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셰익스피어의 누이, 주디스가 아직 살아있다고 한다.     


이제 나의 신념은 글 한 줄 쓰지 못한 채 교차로 묻힌 이 시인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여러분 속에 그리고 내 속에, 또 오늘 밤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이곳에 오지 못한 많은 여성들 속에 살아있습니다. 그녀는 살아있지요. 위대한 시인은 죽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계속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우리 속으로 걸어 들어와 육체를 갖게 될 기회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이제 위대한 시인은 유과장의 육체를 걸치게 되었다. 유과장은 이 시인의 정신이 두 딸의 몸을 통해서도 되살아나길 바란다.


유과장은 『자기만의 방』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책에는 ”꼭 읽어봤으면 좋겠어!“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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