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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소금 Aug 26. 2024

진심이 때로는 더 아프다

진실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나의 유화 작품 이미지


가끔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진실로 진심으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그게 맞는 걸까. 


어쩌면 매 순간 진심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덧 어디서나 어른 취급을 받는 어른이 되었다. 

물론 나이를 먹은 만큼 나도 어렸을 때보다 많이 성숙 해졌겠지만

아직은 내면의 나 자신이 외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도 한참 멀었고 느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주 아주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는 않는다. 

무슨 의미냐면 아주 애쓰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뭐든 열심이었고 최선을 다했고 그로 인해 무리가 가도 

참고 아파도 그게 열심히 해온 증거라고 뿌듯하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다가 정말 아파보니 

건강을 잃는다는 건 쌓아 올려왔던 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과 동일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애써왔던 게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일들이 된다는 걸 의미했다. 

그래서 한동안 너무 허무했다. 

이토록 무너지기 위해 나는 올라가려고 애써왔던 걸까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진심이 때로는 더 아프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고등학교 시절 학원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컨디션 관리 잘하라는 말, 

마지막에 무너지는 애들 투성이라는 말. 

당시에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내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특별하니까.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내 이야기였다. 


그래 그런 인생도 있구나 신기하다. 

그렇지만 나는 안 그럴 거야. 

라고 생각하며 건방지게 너무나 당연하게 내 이야기는 아닐 거라 생각했던 일들이

모두 내 이야기가 되었을 때 

그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은 

어떤 말로도 표현이 되지 않는다. 


입시도 최선이었고 

과제도 최선이었고 

하다못해 모든 인간관계도 최선이었지만 

어느 것도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게 내 이야기였고 나의 지난 인생이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어느 것도 진실에 진심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 나는 묘한 반항심이 들었었다. 

그니까 청춘인 사람들 참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 중 

왜 하필 내가 아파야 하느냐고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현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본인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토록 무력한 청춘이라니 

젊을 때 열정 넘칠 때 도전하라는 막연하게 청춘은 아름답다고 외치는

미디어들과 다르게 

나의 청춘은 별로 아름답지 못했다. 

빛나지도 못했다. 

무채색에 가까운 나날들이 지나갔고 

여전히 그 나날들에 발 묶여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아있는 나날들을 막연하게 아름답게 보기로 했다. 

알 수 없는 희미한 미래들 말이다. 

다가오지 않았기에 

겪어왔던 지난날들과 다를 거라고 

막연하게 상상할 수 있다. 


진심이 가져다준 결괏값이 진실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나는 진심을 믿을 수가 없다. 

어떠한 진심도 진실되지 못하다. 

그럼에도 진심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떳떳한 인생을 살아가는 쪽으로 

나의 미래를 걸었다. 


특별히 대단한 결과를 바라는 게 아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평탄하고 무난한 나날들만이 

나의 남은 시간들이면 좋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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