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나를 덜 미워하기까지

by 윤다솔







나는 어렸을 때 항상 들었던 소리가 있다.


“피부에서 광이 난다.”

“피부가 너무 예쁘다.”


친척 어른들이 나를 볼 때마다 하던 말이었다.

그 말이 얼마나 귀중한 건지도 모르고,

건성으로 듣고 흘려보냈던 날들이 많았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도 비슷했다.

그때는 그냥 피지 분비가 활발해져서

약간 윤기가 도는 정도.

좀 안 씻으면 뾰루지 하나 나는 정도였다.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피부 고민이란 걸 해본 적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코팩을 왜 하는지 이해도 못 했다.


그러던 내가,

피부에 콤플렉스를 갖기 시작한 순간이 찾아왔다.


십 대 후반, 그때 잠깐 해외에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 1년은 괜찮았다.

건조한 기후여서

‘오히려 좋아, 나는 약간 지성이니까 괜찮지’

라고 생각했다.


물갈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숨어 있을 줄은 짐작도 못 했다.


1년 반쯤 지났을까.

볼에 화농성 여드름이 하나둘 뾱뾱 올라오기 시작했다.


피부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익지도 않은 여드름을 짜고, 건드리고, 파냈다.


어느 날, 평범하게 학교에서 친구와 인사하는데

”너 요새 피부 왜 그래? “

라고 물었다.

대체로 외모를 직접 지적하는 분위기가 덜한 곳이기에

더 충격적이게 다가왔고

그 뒤로도 몇몇 친구들이 내 피부에 대해

한 마디씩 얹는 걸 보며 심각성이 체감이 됐다.


여드름은 점점 번졌다.

턱, 볼, 관자놀이, 코, 이마.

안 난 곳이 없었다.


온 신경이 피부로 몰렸다.

앞머리를 내려 이마를 가리고,

모자를 쓰고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고.


그렇게 나는 얼굴을 가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진 찍는 것이 꺼려졌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을 때면 꽃받침 하는 척 얼굴을 가리거나,

최대한 뒤로 물러나

내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는 곳에서 포즈를 취했고,


버스 창가에 앉는 걸 좋아하던 나는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이 싫어

가능한 창가 근처에 앉는 걸 피했다.


누가 내 얼굴을 볼까 봐,

내 얼굴을 보고 경악할까 봐

온갖 상상을 하며 더 깊게 숨었다.


상처는 파고들어 깊고 넓은 흉터가 됐다.

그 흉터는 내 10년짜리 족쇄가 되었다.


흉터가 뭐라고, 내 인생이 망가져가는 것 같았다.


한국에 돌아오면 괜찮을 줄 알았다.

실제로 조금씩 가라앉긴 했지만

속도가 너무 더뎠다.

한 번 폭발한 여드름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하나 가라앉으면 두 개 올라오고,

두 개 가라앉으면 하나 올라오고.

끝없는 반복이었다.


새로 난 여드름 개수를 세다가,

어느 순간부터 의미 없게 느껴져 세는 걸 포기했다.


씻으러 들어갔다 거울을 보면 우울해졌다.

거울에 비친 내 피부를 보다

화를 참지 못 해 벅벅 씻다가, 결국 여드름을 짜고.


화장을 하려 해도

가려지기는커녕 더 지저분해 보이는 피부에 절망했다.

가리면 더 올라오고,

가리지 않자니 거울 속 얼굴이 너무 싫었다.


피부과를 가자니 돈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투자해볼까 싶다가도

장기적으로 피부과에 다닐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너무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니,

어느 순간 그냥 놔버리게 됐다.


어쩌라고.

내 마음대로 살 거야.

누가 보든 말든.


그렇게 피부에 신경을 끊어버렸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화농성이 잠잠해졌다.

돌이켜보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났던 것이다.


이 간단하지만 어려운 걸

그때의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이 미친 피부야.


그렇게 가라앉고 몇 년의 사투를 벌였지만

여드름은 여전히 하나씩 올라온다.

깊은 흉터들도 남아 있다.

그건 아직 돈을 들여 치료 중이다.

지갑은 아프지만,

그래도 조금씩 지워지는 걸 보며

그 크고 깊던 흉터들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완벽하게 여드름이 안 나는 건 아니다.

부리형 마스크를 쓰면 올라오고,

치약을 잘못 쓰면 알레르기 같은 여드름이 난다.

가끔 스트레스받으면 또 뾱, 고개를 내민다.


그럴 때 나는 예전처럼 발작하듯 관리하지 않는다.

최소한으로 씻고, 너무 커지면 짜고, 스킨로션만 바른다.

신경 쓰지 않고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어느새 가라앉아 있고, 예전처럼 번지지는 않는다.


가끔 씻고 나서 거울을 볼 때면

예전 얼굴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한 번도 피부걱정은 전혀 하지 않던

평온했던 그 얼굴이.


그래도 요즘엔,

여드름이 하나 올라와도 예전처럼 세상이 끝난 것처럼 절망에 빠져있지 않는다.


흉터는 여전히 얼굴에 남아 있지만,

내 얼굴을 미워하는 일을 조금씩 그만두는 중이다.


적당히 타협하며 지내는 중인 느낌.

그래. 여드름 또 났구나.

내가 또 무언가 스트레스를 받았구나.

생각하고 넘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완벽하게 여드름 박멸 루틴보단

‘최소한의 씻기와 로션’ 정도로 흘러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