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식사 문제는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아니 어쩌면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의 숙제처럼, 숙명처럼 남아있는 문제 같다.
태어나서는 모유나 분유를 잘 먹지 않아서, 이유식을 잘 먹지 않아서, 유아식을 식사를 많이 먹지 않아서 잘 못 클까 봐 걱정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 결혼해서 까지도 부모에게 자녀의 식사 문제는 큰 걱정거리인 것 같다.
'요즘 뭐 먹고 지내니?' 이건 우리 시어머니의 인사말이다. 다른 집이라고 다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반찬을 바리바리 싸다 주는 친정과 시댁 식구들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
이처럼 아이의 식사 문제가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 부모의 '숙명'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아주 깊은 심리학적, 진화론적, 그리고 사회문화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인간의 뇌에는 종족 보존을 위한 강력한 회로가 설계되어 있다. 원시 시대부터 먹을 것은 생존과 직결되었다. 부모에게 아이가 잘 먹지 않는다는 것은 '생존의 위협'이었다.
그래서 자녀가 음식을 거부할 때 부모의 뇌에서는 편도체가 활성화되며 '위험 신호'를 보낸다. 이는 이성적인 판단(현대에는 먹을 것이 풍족하다는 생각) 보다 훨씬 강력한 원시적 공포인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는 '이것은 단지 뇌의 편도체 활성화로 인한 위험 신호일뿐이다'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1. 배부르다고 하면 주지 않는다.
먼저, 음식은 먹지 않는 편이 억지로 먹는 것보다 낫다. 억지로 먹음으로 아이에게는 오히려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그 이후로 아이는 오히려 음식을 더 안 먹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의사이다. 그래서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주지 않아야 한다. 배가 고프면 모든 아이는 다 잘 먹는다. 물론, 아플 때 못 먹는 건 걱정이 될 수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너무 전전긍긍하지 말자. 이건 필자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 맞다. 필자 역시 아이가 먹지 않음을 잘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참아보고자 노력한다. '먹기 싫으면 먹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억지로라도 하려고 한다.
2. 아이가 식사시간을 정하게 한다.
식사 시간을 딱딱 정해서 주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딱딱 떨어진다는 말인가. 어제는 5시에 배고플 수 있고, 오늘은 6시에 배고플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해 준다. 5-7시 사이를 저녁 식사 시작 시간으로 정해두고 아이에게 배가 고픈지를 묻는다. 5시에 배고프다고 할 때도 있고, 7시에 배고프다고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때 준다. 그러면 대개는 잘 먹는다. 심지어 더 달라고 할 때도 있다!!!
3. 애초에 밥을 많이 담지 않는다.
아이가 밥을 남기면 속상하다. 그러면 밥을 남기지 않게 하면 된다. 아이가 평소 밥을 많이 남긴다면 밥 양을 확 줄여서 줘라. 그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심지어 더 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될 수도 있다. 많이 먹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이의 위는 우리 어른의 위의 크기와 다르지 않은가. 무엇보다 아이 자신도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영양분이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직감적으로 알 것이다. 그것을 믿어주자. 또한 그래놓고 간식을 너무 많이 주는 것도 안될 것이다. 그러면 밥을 조금 먹고 간식만 많이 먹으려 할 테니까.
4. 잘 안 먹을 것이 예상되는 날엔 특별식을 준다.
낮에 점심을 많이 먹었거나 간식을 많이 먹은 날엔 저녁을 먹지 않을 것이 예상되는 날이 있다. 그럴 땐 저녁에 특별식을 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두나 국수. 그런 것으로 준비해서 주면 또 배가 불러도 맛있게 잘 먹는다.
우리의 뇌는 여전히 석기시대의 공포에 사로잡혀 '더 먹이라'라고 외치지만, 이제는 그 신호를 이성적으로 잠재워야 할 때이다. 적게 담고, 아이의 타이밍을 기다려주며, 때로는 특별한 메뉴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 아이를 위한 이 사소한 배려가 모여 우리 아이들의 식사가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여러분 모두 아이들과의 식사 전쟁에서 살아남으시기를 바라며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