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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Oct 27. 2024

단편소설 - 시선(7)

해원은 살인자의 딸이다. 선주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칼로 찔렀다. 해원이 열 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둔 어느 겨울이었다. 선주는 해원 앞에서 수갑을 찼다. 수건으로 수갑을 감춰주는 호의 따위는 없던 시절이었다. 현장에 있던 해원도 함께 경찰서로 갔다. 며칠 후 봉사자가 해원을 데리고 간 곳은 거제도였다. 그때만 해도 해원은 거제도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배를 타지 않고 가는 섬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섬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척이 있다는 것도.


차가 멈춘 곳은 둥근 모서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각진 2층 건물 앞이었다. 이미 해가 저물어 사위가 어둑했다. 허름한 간판이 붙은 아래층 상가는 불이 꺼져 있었다. 상가 옆 건물 입구는 시커먼 속을 짐작할 수 없었다. 봉사자의 손에 이끌려 입구에 다가가자 센서등이 켜지며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위 층계참은 육중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안에는 해원보다 서너 살 어려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육촌인지 팔촌인지 알 수 없는 어린 친척은 낯선 불청객에 대한 적의를 감추지 않았다. 부모의 영향일 터였다. 아이들은 부모가 흉보거나 욕하는 대상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니까. 해원은 열흘 만에 경기도에 있는 보호시설로 옮겨졌다. 시설 내 아이들은 대부분 해원 또래였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곳이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원은 위탁 가정으로 보내졌다. 역시 처음 들어보는 도시였고 거제도만큼이나 낯설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혈연관계가 없는 일반 위탁은 드문 경우였다. 만약 그때 위탁 가정을 찾지 못해 시설을 전전했다면 어땠을지 해원은 가끔 궁금했다. 


방해받는 것도, 누군가를 귀찮게 하는 것도 싫어하는 해원이었다. 그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다. 그러나 방해받지 않는 것은 의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늘 그녀를 쫓아다녔다. 낯선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그리고 혐오감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무엇으로부터의 두려움인지, 무엇에 대한 혐오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을 쳐다보며 귓속말하는 친구들을 못 본 척, 못 들은 척 무시했다. 점차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반 아이들은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그녀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상황은 학교에서도 소수의 선생님만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해원을 해코지하는 친구도 없었다. 마음 한편에 묻어 둔 비밀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분노와 혐오감을 느낀 건 그들이 아니라 해원 자신이었다. 해원은 친구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에 합격한 해원은 그다음 해에 9급 공무원이 되었다. 


사회로 나온 해원은 타인의 시선에 차츰 익숙해졌다. 그러나 익숙해졌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에 반응하는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해원의 머리 위로 롤러코스터가 달리고 있었다. 굉음과 뒤섞인 사람들의 환호와 비명이 귓가에 들렸다. 열차가 머리 위를 지나갈 때 그녀의 몸은 붉은 원통 레일의 진동에 공명하며 함께 떨었다. 해원은 여전히 그 아래에 서 있다. 얼어붙은 듯 서 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 알 수 없는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그날 해원은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엄마를 만났다. 딸이 위탁 가정에서 생활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 선주가 줄곧 면회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만난 엄마는 해원이 그동안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정수리에 하얗게 내려앉은 흰머리와 부쩍 야윈 얼굴이었다. 눈가에 흩어진 갈색 반점과 목의 주름이 눈에 들어온 건 시간이 조금 지난 후였다. 외부 공간과 철저히 차단된 그곳도 시간을 차단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정신의 시간은 언제나 더디게 흘러가는 법이다. 해원의 기억 속 엄마는 술에 취한 아빠를 피해 커다란 바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딱 한 번, 그때만은 달랐다. 땅에 붙박인 돌덩이가 아니라 시위를 떠난 화살 같았다. 엄마는 망설임 없이 칼날과 함께 온몸을 던졌다.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해원은 궁금했다.


‘엄마는 그 순간 딸을 생각했을까? 세상에 홀로 남은 딸이 어떻게 살아갈지 몰랐을까? 엄마, 정말.... 몰랐어? 정말... 그걸... 몰랐어? 정말 몰라서... ’ 


'정말... 그걸... 몰랐어? 정말 몰라서...', 질문은 항상 같은 자리에 멈췄고, 깊이 묻혔다. 해원은 엄마 앞에 있는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눈앞이 흐려진 해원은 고개를 들고 눈에 힘을 주었다. 선주는 건강하게 자란 딸을 보며 연신 소리 없이 웃을 뿐이었다. 미소 짓는 얼굴에서 서서히 해원의 기억 속 엄마가 겹쳐졌다. 엄마는 딸에게 당부했다. 과거 일은 다 잊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그날 거대한 철문을 나오면서 해원은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오랫동안 깊이 감춰둔 질문, 지금껏 애써 외면했던 질문을 꺼내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묻지 않으면 굳이 알지 않아도 되니까,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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