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자는 며칠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들이 왜 하필이면 범죄자의 딸과 결혼해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살인자의 딸이라니! 모임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숙자가 없는 곳에서 수군거릴 그들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아니, 그 집 며느리, 살인자의 딸이래요!’
‘어이구, 어쩌다 아들이 그런 여자한테 빠졌을까.’
‘그렇게 착하고 순진하던 정수가, 여시한테 홀렸나 보네요. 쯧쯧쯧’
‘그 집안은 신심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그런 벌을 받았을까요.’
‘사람 속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게요, 역시 사람 속은 모르나 봐요.’
어느 집에 사고나 우환이 있을 때마다 예의 바르게 다독여주곤 하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는 온갖 억측과 소문이 난무했다. 숙자는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어이구, 이 놈의 여편네들, 징글징글한 년들.”
숙자가 이불을 걷어 차고 일어나 앉았다. 오늘은 기어코 정수와 담판을 지을 생각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결혼만은 막아야 한다. 숙자는 퇴근하고 들어오는 정수를 안방으로 끌어와 앉혔다.
“이 결혼은 내가 죽은 다음에나 해라! 난 절대 이 결혼 두고 볼 수 없다!!”
숙자의 단호한 태도에 정수도 순간 위축 되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어머니, 부모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건 자식과는 관계없는 일이에요.”
“뭐라고?! 그래, 천번 만번 양보해서 도둑놈 딸이라고 치자.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부모가 실수했다고 치자고. 그런데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살인자라니, 그 피가 어디로 가겠니? 그것도 남편을 죽인 살인자라니!! 아이고...”
정수는 고개를 숙였다. 이대로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해주자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부모에게 칭찬 받을 때마다 느꼈던 감정이 그를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해원을 떠올렸다. 이토록 확신에 찼던 적은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해원에 대한 감정보다 더 큰 것이었다.
“해원인 그런 환경에서도 공무원이 됐고 지금도 혼자서 꿋꿋하게 살고 있어요. 어머니도 처음에는 마음에 들어 하셨잖아요. 예의 바르고 성격도 순하다고. 그럼 된 거 아니에요? 해원이가 살인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숙자의 두 눈이 커졌다. 눈에 힘을 주고 대드는 아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숙자의 놀란 눈빛을 보자 정수는 조금 누그러진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녀 어머니가 살인자라는 건 개인정보예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우리가 떠들지만 않는다면요. 사회가 그렇게 수용자 자녀들을 보호하는 거고요.”
수용자라는 낯선 단어까지 쓰면서 말하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숙자는 부아가 치밀었다.
“수용자? 그건 또 뭔 말이야! 범죄자면 그냥 범죄자지. 그리고, 말 안 하면 괜찮다고? 넌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당장 결혼식에 온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할 거냐? 애비를 죽인 어미가 감옥 가서 참석 못했다고?”
안정적인 가정에 집착했던 해원은 한 가지 고민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살인자의 딸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고 해도 그의 가족은 어떨까? 네 곳의 위탁 가정을 거쳤던 해원이 양부모 중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있을 것이다. 상견례나 결혼식 정도는 괜찮을 수 있다. 그러나 평생 부모 역할을 부탁할 수는 없다. 언젠가 남자의 가족들도 알게 될 것이고, 그들이 느낄 배신감은 돌이키지 못할 것이다. 남자가 고아라면 괜찮을까. 고아인 남자를 찾을 수 있을까. 찾는다고 한들, 해원은 평생 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고통스러운 모습을 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해원은 자신과 같은 아픔은 없는 남자가 필요했다. 차라리 자신이 고아인 편이 나았다. 아니, 자신은 고아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지울 수 없는 상처만 주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먼 친척 역시 그녀를 거부했다. 해원은 정수에게 자신을 고아로 소개하는 게 어떨지 물었다. 정수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처음부터 부모를 속이고 싶지 않았고, 해원이 친모를 부정하도록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그때 생각해 봐도 늦지 않았다. 지금, 그때가 왔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고아라고 하셔도 돼요. 해원이도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어머니, 고아든 살인자의 딸이든 전 결혼할 겁니다.”
숙자는 지금껏 보지 못한 정수의 단호한 태도에 놀랐다. 처음으로 정수가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결혼해서 분가하는 모습은 가끔 상상했다. 그러나 단순히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끊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정수를 이렇게 만든 해원이 죽도록 미웠다. 그러나 아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가 그 모든 증오를 억눌렀다.
마음을 가라앉힌 숙자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뭐라고 쑥덕거릴까. 그렇게 자랑하던 잘난 아들이 기껏 고아와 결혼한다고 흉보겠지. 그래도 살인자의 딸보다는 낫지 않을까. 정수 말마따나 고아로 자란 여자가 비뚤어지지 않고 공무원이 되었으니 장하다고, 대견하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숙자는 아들을 잃는 것보다 차라리 고아 며느리를 선택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