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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Oct 27. 2024

단편소설 - 시선(13)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자취를 감추고 하늘이 짙은 속살을 드러냈다. 시들어 가는 벚꽃에 황금빛 햇볕이 마지막 생기를 불어넣는 모습이 TV 화면에 비쳤다. 제주도는 5월에도 벚꽃이 지지 않는구나, 생각하던 그때 정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퇴근 후 바로 들어온다고 했다. 오늘은 작가 모임이 있는 날이다. 모임에 빠지는 날은 손꼽을 정도였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 됐지만, 이내 모임이 취소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모임에 빠지고 집에 일찍 왔으면 하고 바라던 차에 잘 된 일이기도 했다. 해원은 자신이 휴직하면 정수가 편하게 일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퇴근 후 모임은 많아졌고 저녁은 거의 밖에서 해결했다. 새벽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날도 늘었다. 편두통은 더 심해졌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종합 검진에서도 큰 이상은 없었다.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면서,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출근하기 바빴다. 


마트에 갔다 오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집에 있는 재료로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편두통에 좋다는 기사를 본 후 냉동고에 쌓아둔 연어가 생각났다. 요리법도 간단했다. 연어를 먹기 좋게 한 덩이씩 잘라 레몬과 올리브유,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맞춘 뒤 호일로 감싸 오븐에 구우면 끝이었다. 정수는 물론 수빈이도 좋아했다. 줄곧 테이블 곁을 맴돌며 요리를 지켜보던 수빈이가 현관문 소리에 바로 달려갔다. 


"아빠! 아빠! 연어 구이예요, 빨리 와서 같이 먹어요."


"읏차, 우리 수빈이, 잘 놀았어?”


아빠에게 꽉 안긴 수빈이가 까르르거리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근데 오늘 아빠 좀 피곤하네, 잠깐 자고 나올게. 엄마랑 먼저 먹어."


오늘따라 정수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오븐에서 연어를 꺼내던 해원이 돌아봤을 때 정수는 이미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녁 안 먹었지? 자기 좋아하는 연어 구이야. 오늘 특별히 잘 굽혔네. 맛만 봐."


"어, 미안. 피곤해. 나중에"


정수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먹먹하게 울렸다. 오랜만에 일찍 들어온다고 해서 준비한 식사였다. 섭섭한 마음에 심통이 났다. 내심 정수가 듣기를 바라며 심술궂게 내뱉었다. 


"그러니까 진작에 모임을 좀 줄였으면 좋잖아."


 해원은 곧 후회했다. 마음으로나마 숙자 편을 들었던 자신이 생각나 눈살을 찌푸렸다. 


그날 밤 정수가 들어간 방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해원이 살며시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정수가 벽 쪽을 보며 모로 누워 있었다. 간단히 요기라도 할 수 있게 깨우려던 해원은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많이 피곤했나 보네. 몸살인가. 내일 토요일이니까 동네 병원이라도 같이 가봐야지.’


해원은 수빈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정수가 늦게라도 일어나 서재로 갈지도 몰랐다. 그때 뭐라도 챙겨줘야지 생각하며 딸 곁에 잠시 누웠다.


딸아이의 앙칼진 소리에 해원이 눈을 떴다. 샛노란 아침놀이 딸아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잠결과 현실 사이에 갇혀 있던 해원은 순간 몸을 벌떡 일으키고 안방으로 뛰어갔다. 새파랗게 질린 수빈이가 아빠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해원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은 정지되고 오직 몸만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정수에게 달려들어 팔을 흔들었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순간 정수의 손이 움직이는 것도 같았고 입술을 달싹거리며 뭐라고 대답한 것도 같았다. 그러나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정수는 눈을 뜨지 못했다. 해원은 밤낮으로 중환자실 앞에서 정수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꼬박 일주일이었다. 뇌혈관이 터진 정수는 영원히 눈을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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