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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들불 Oct 27. 2024

단편소설 - 시선(14)

숙자는 정수를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전부였던 아들, 생때같은 아들을 이렇게 허망하게 놓아 버릴 수 없었다. 사지 멀쩡했던 아들이 한순간 사라졌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남편을 죽인 살인자의 딸, 죽은 아버지의 재산으로 생활했던 해원이 원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원인이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껏 큰 병치레 하나 없이 귀하게 자랐던 아들이 한순간에 그리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숙자는 아들을 잃게 된 마당에 체면이나 위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원통하고 억울한 처지를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내가 말 못 했던 응어리가 있어요. 억울해서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그년, 해원이 그년이 사실 살인자의 딸이에요. 그 년이 우리 정수도 잡아먹은 것 같아요!”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수가 죽은 게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의도적인 살인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무슨 소리예요? 며느리가 고아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살인자의 딸이라니.”


“그러게요, 그렇게 조용하고 얌전한 며느리가. 그럼, 아버지가 살인자였다는 거예요?”


숙자는 한숨과 함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어릴 때 그년 어미가 남편을 죽였어요. 평생 감옥에서 썩을 만큼 중형을 받은 걸 보면 돈 때문에 해코지한 게 틀림없어요. 남은 재산을 해원이 그년이 몽땅 물려받아서 그걸로 생활했데요. 그 재산이 아니었다면 어린년이 어떻게 그렇게 공부하고 공무원까지 할 수 있었겠어요.”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숙자의 손을 잡았다. 


“선임님이 지금 어디 제정신이시겠어요? 온갖 나쁜 생각이 다 드시겠죠.”


“아무렴, 딸아이 아빠를 죽였을까요?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위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권 주임의 눈이 번뜩였다. 


“정수도 생명보험 한두 개쯤은 들었겠죠? 며느리가 얼마나 받게 될까요?”


“아이고, 그런 거야 지들이 알아서 했으니 우린 모르죠. 그래도 우리 정수 목숨값으로 그 년이 큰돈을 받을 거예요. 불쌍한 우리 정수, 아이고...”


다들 권 주임에게 눈치를 주고는, 정신을 놓아버린 숙자의 등을 번갈아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보험 문제는 정수 아버님이 어련히 알아서 대처하시겠죠.”


“신이 일찍 부르신 게 원망스럽지만 다 뜻한 바가 있으실 거예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기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말투에 숙자는 속에서 천불이 났다. 게다가 남들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대가가 아들을 먼저 부른 거라니, 지랄, 염병하네! 순간 상처한 신자를 위로한답시고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먼저 부르신 것도 다 뜻이 있는 거라고. 숙자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다물었다.  


권 주임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뭔가 흥미로운 사건이 숨어 있을 것 같았다. 해원이 이곳에 오기 전 서울에서 근무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최근 문화 센터 수업에서 최 주무관을 알게 됐다. 그는 서울 어느 구청에서 퇴직하고 최근에 이곳으로 왔다. 남들이 잘 모르는 은밀한 이야기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에게서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권 주임은 숙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가 며느리에 대해 한 번 알아봐 드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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