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권 주임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원이 이전에 근무했던 곳에서 남자관계가 복잡했다고 한다. 반반한 외모 때문에 주변에 남자가 끊이지 않았는데, 어느 누군가는 술집에서 그녀를 접대부로 만났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서울에서 쫓겨나듯 했다고 한다. 이곳에 와서도 해원은 만나는 남자가 자주 바뀌었다. 심지어 동거까지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해원이 결혼했을 때 남자 하나 제대로 잡았다고 여직원들 사이에서는 말이 많았다고 했다.
소문을 긁어모아 흥미롭게 엮어내는 재주가 뛰어난 권 주임이었다. 이번 이야기는 살인자의 딸이 주인공이다. 주인공 어머니는 남편을 죽이고 감옥에 간다. 부모의 재산으로 딸은 큰 어려움 없이 공부하고 공무원이 된다. 그러나 아버지를 눈앞에서 잃은 그녀에게 남성 편력이 생긴다. 남자를 통해 안정을 느끼는 것이다. 직장이 있지만 술집에 접대부로 나가 남자들에게 안기곤 한다. 남자를 자주 바꾸며 동거까지 한다. 그러던 중 자신에게 깊이 빠진 어느 순진한 남자와 결혼한다. 어느 날 남편이 급사하고 여자는 거액의 보험금을 탄다. 권 주임은 한숨을 쉬었다. 삼류 소설 같은 식상하고 김 빠지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이 남편을 살해할 만한 이유도 없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진부한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줄 퍼즐 한 조각이 떠올랐다. 정수가 신혼여행을 취소했었다. 해원이 임신 초기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권 주임이 완성한 이야기는 삽시간에 퍼졌다. 소문이란 참으로 요망해서 한 사람의 입을 거칠 때마다 이야기가 새롭게 덧붙여졌다. 권 주임이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완성본을 전달했을 때 숙자의 머릿속에서는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결혼식 일주일 전 아들 내외가 임신 사실을 알렸다. 손이 귀한 집안이었다. 손주가 생겼다는 소식에 온 집안은 잔치 분위기였다. 그렇게 꼴 보기 싫던 해원마저 그때만큼은 밉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때 혼전 임신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을까. 순간 출산 후 남들보다 일찍 복직했던 해원이 생각났다. 휴직도 거부하며 악착같이 직장에 나가려던 모습도 겹쳐졌다. 갑자기 안개가 걷히듯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어이쿠, 숙자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지금껏 세상사를 한눈에 꿰뚫고 있다고 큰소리치던 숙자였다. 새파랗게 젊은 년에게 놀아났다는 사실에 수치와 함께 분노가 들끓었다.
“그 년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정수에게 달라붙었던 거야. 속에는 이미 다른 놈의 씨를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