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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송 Aug 11. 2024

환갑샤워

엄마는 늘 마음을 듬뿍듬뿍 주는 사람이었다. 다섯 식구가 사는 열 평 남짓 집에 친구를 초대해도 부끄럽지 않은 이유였다. 라면 한 그릇을 끓여도 온 마음을 담아냈고 친구들은 그런 우리 집을 좋아했다. 해마다 김장을 하면 없는 살림에 꼭 두 배는 해야 했다. 옆집 할머니, 건너편 슈퍼 할아버지, 동네 친구, 동생 할 것 없이 나누는 걸 참 좋아했다.


그런 엄마의 61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마음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던 그녀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문득 브라이덜 샤워가 생각났다. 결혼 전 신부를 축하하기 위해 여는 파티, 요즘은 태어날 아기를 축복하기 위해 베이비 샤워도 종종 한다고 한다. 브라이덜 샤워도 베이비 샤워도 해본 적 없지만 그녀를 위해 환갑샤워를 열기로 결심했다.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말하자면 환갑잔치였다. 수명이 늘어 환갑에 큰 잔치는 하지 않지만 60년을 살아낸 그녀에게 제대로 된 축하를 하고 싶었다. 브라이덜샤워는 신부라는 뜻의 브라이덜(bridal)과 소나기(shower)의 합성어다. 신부 친구들의 우정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환갑샤워를 이렇게 정의했다. 가족들의 사랑이 그녀에게 비처럼 쏟아지고 있음을 전하는 시간, 엄마의 남은 생에 수많은 사랑과 행복이 내리게 될 것을 축복하는 파티.


그날을 위해 가족들이 단합했다. 몰래 파티룸을 예약하고 영상편지를 찍었다. 엄마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아빠 영상을 촬영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무사히 임무를 완수했다. 어설픈 실력으로 동영상을 편집하고 현수막을 제작해 미리 파티룸에 걸어두었다.


드디어 환갑샤워 당일,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2차는 카페로 이동하는 척 엄마를 속였다. 의심 없이 따라오는 그녀를 데리고 파티룸 문 앞에 도착했다. 파티룸은 위치가 조금 구석진 곳에 있었다. 이런 곳에 카페가 다 있네? 의아해하는 엄마에게 아주 인기가 많은 곳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둘, 셋! 문을 열자 환갑 축하를 알리는 현수막이 그녀를 맞이했다. <꽃청춘 김정자, 인생은 지금부터!> 눈이 휘둥그레진 엄마는 기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파티룸엔 다양한 드레스가 있었고 우리는 곧장 엄마가 입을 드레스를 골랐다. 어색해하며 순백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어느 때보다 곱고 눈부셨다.


주인공인 엄마를 가운데 앉히고 준비한 영상을 재생했다. 젊은 시절 엄마 모습부터 삼남매가 자라온 과정을 사진으로 닮았다. 이어지는 영상에선 사촌 동생 지혜와 영재를 시작으로 가족들이 하나둘 마음을 전했다.


엄마가 가장 놀란 건 아빠였다. 대체 언제 찍었냐 놀라며 아빠 얼굴과 영상을 번갈아봤다.


"지금까지 가정을 맡아서 애들 잘 키우고, 남편 보조 잘하고, 늘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고.. 앞으로 행복한 시간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한번 살아봅시다. 축하합니다"


30초 남짓 영상 속 아빠는 몹시 멋쩍어하며 짧은 말을 남겼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없는 아빠가 꾹꾹 눌러 담은 삼십 초짜리 진심에 엄마는 연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영상이 끝나고 모두 엄마 얼굴을 주목했다. 그녀는 분명 우는데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가 육십 평생 이런 걸 다 받아보네, 너무 고마워" 엄마를 닮은 우리도 우는데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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