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봄희 시인처럼 우리 집에도 우물이 있었다.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아이를 낳고 이웃집에 물을 길러갈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며 가끔씩 엄마는 옛일을 떠올렸다. 지금으로선 그 당시 여인의 삶을 상상할 수도 없다. 언제 우물을 팠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 집에도 우물이 생겼다. 시인의 집처럼 여름이면 김치를 넣어두고 먹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물이 찬기가 조금 가신 미지근한 물이었다. 겨울 아침에 우물에서 김이 조금씩 났던 것도 같다. 우물 둘레를 쌓은 동그란 담 위에 눈이 쌓인 아침 풍경은 아직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린 날 밤에는 우물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우물에서 귀신이 나오는 드라마를 봐서 무섭기도 했고 낮과는 다르게 우물은 유독 어두컴컴했다. 집집마다 물 맛은 조금 달랐다. 동네 입구 대나무집이 물맛 좋기로 소문이 났었다. 다른 집과는 다르게 담이 없이 깊은 옹달샘처럼 생겨서 바가지로 바로 퍼서 쓰는 우물이었다. 우물 근처에는 고사리가 자랐고 우물 안에는 무당개구리가 살았다. 물맛이 어떤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알록달록 무서운 무당개구리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은 우물 입구를 막고 수도로 연결해서 쓴다. 저수지에서 나오는 상하수도는 식수로 사용하고 우물을 연결한 수도는 이젠 텃밭에 물을 주거나 허드렛물로 사용한다. 지하수가 많이 오염되어서 식수로는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두레박에 찰름찰름 흔들리면서 올라오는 물을 다시는 먹을 수가 없다. 이제는 흘리지 않고 조심조심 두레막을 길어올렸던 유년의 시간과 우물에 뭔가를 빠트렸을 때 방을 동동 구른 기억만이 살아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