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개운한 웃음

부부 교환일기 by 김쥬둥

by 다슈니와 호돌이

#25년 12월 26일

금요일



유머러스한 사람은 어딜 가나 인기가 있지요. 소심한 내적 관종인 저로서는 내심 탐나는 재능이었습니다. 제법 오랜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아마도 6세에서 7세였겠지요. 어머니께서는 두 살 터울의 누나를 유치원에 보냈으나 만족스럽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는 유치원이 아닌 웅변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내성적이거나 말수가 적은 아이, 특히 남자아이라면 웅변학원을 보내는 게 유행이었던 모양입니다. 지금 보면 제법 기괴한 웅변대회도 있었으니 당시로서는 크게 이상한 게 아니었겠지요. 그때 무대에서 큰 소리로 외치면 어른들이 웃기에 열심히 했습니다. 종업식 때에는 남녀 짝을 지어 갑돌이와 갑순이 같은 무대도 했는데 마지막에 제가 갑순이를 업고 뱅글뱅글 도는 게 마무리였습니다. 동갑이라고는 해도 발육이 더딘 남아들도 많았기에 또래의 짝꿍을 업고 무대에서 제자리에서 도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잘 해냈고 역시나 어른들이 박장대소를 하기에 본 무대에서는 거의 스무 바퀴는 돌았던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기억으로는 3~4학년 어딘가의 일입니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담임선생님께서 나른한 오후나, 반에 지루한 분위기가 흐르면 저를 불러내곤 하셨습니다. 저는 누나한테 들었던 최신 유우머나 퀴즈, 또는 책에서 보았던 이야기를 짤막하게 풀어냈습니다. 혼자서 하는 1인극, 짧은 꽁트였던 셈입니다. 다들 재밌어하고 담임선생님도 좋아하셔서 저를 호명할 때면 빼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교단에 서서 썰을 풀곤 했습니다. 반 친구들이 등하굣길에 저를 보면 어제 했던 그거 다시 해달라고 붙잡기도 했지요. 일종의 유행어였던 셈입니다. 레퍼토리가 금방 떨어져서 제 원맨쇼는 금세 끝이 나버렸지만, 무대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하다 보니 모임에서도 제법 나대곤 했습니다. 저는 주로 사람들이 면밀히 관찰하다가 그들을 따라 하거나, 했던 말을 비트는 식으로 유머를 구사하는 편입니다. 개그의 기본 중의 기본, 반복을 즐겨 쓰곤 하지요. 반복하면서 미묘하게 변주를 하는 게 중요 포인트랄까요.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한번 크게 웃음을 터뜨린 센스 있는 유머가 있었다면 그걸 곱씹으며 그날 밤에 만족스럽게 잠에 드는 광대였습니다.

지금도 그 버릇은 여전해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걸 좋아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맑고 깨끗한 웃음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단 둘이 있을 때는 괜찮습니다만,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는 누군가 한 명을 유머의 소재로 잡고 개그를 풀어내는 경우가 많지요. 전에는 다 같이 웃었으니까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그 개그의 소재가 된 사람에게는 뒷맛이 개운치 않은 유머였지 않았을까, 고민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그런 거 다 신경 쓰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냐고 일갈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큰 웃음보다는 작은 미소 한 번이 더 만족스럽습니다. 어릴 때는, 난 칭찬을 잘 못해! 라며 애써 피해왔던 진실. 타인을 칭찬한다는 건 자존감이 높고 스스로가 단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지금 눈앞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원래보다 더 대단하게, 또는 깎아내리는 것이 아닌. 정말로 맑고 투명한 눈으로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는 일. 우리는 그제야 억지로 짓던 웃음을 내려놓고, 담백하게 미소 지으며 서로를 알아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평양냉면 같은 미소를 추구하는 김쥬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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