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도 달려도

부부 교환일기 by 김쥬둥

by 다슈니와 호돌이

#26년 2월 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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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도 그렇고 달리기도 그렇고 지구력이 중요한 취미겠지요. 다슈니도 그렇겠지만, 저도 완력이 강한 편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마르고 왜소한 체격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어쩌다 팔씨름을 하게 되면 열에 아홉은 지는 편이었어요. 그래도 뛰어다니는 건 제법 잘했습니다. 가벼우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겠네요. 걷거나 산을 오르는 것도 묵묵히 하는 편이었지요. 제가 곧잘 한다는 소릴 들었던 운동은 지구력을 요하거나 체중이 가벼우면 유리한 종목이었습니다.

오래 달리기는 중학교 때 처음 해본 것으로 기억해요. 초등학교 때 체력장에선 100m 달리기까지만 했었고요. 중학교 1학년 때 체력장이라 기억이 확실하진 않은데 아마 3,000m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달리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앞다투어 전력질주를 하다가 페이스를 잃고 금세 다리가 풀렸었지요. 겨우겨우 완주는 했으나 운동장에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늘이 노래지고 심장이 마구 뛰다 못해 머리, 종래에는 온몸이 쿵쿵 울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오래 달리기를 할 일이 있으면 나름 상위권에는 들었습니다. 고등학교나 군대에서도 말이죠. 하지만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건 23년부터입니다. 평생 마르고 왜소한 몸으로 살아오다 보니 오랜 꿈 중의 하나가 근육맨이 되는 거였습니다. 이 근육맨 프로젝트는 16년에서 17년 정도부터 시작했는데, 근육맨이 되기는커녕 하루가 멀다 하고 부상을 입게 되면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래도 아주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는지 본래의 체중에서 5kg, 많게는 10kg까지 증량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게 전부 근육이었다면 좋은 일이었겠지만, 그럴리는 없겠지요. 대부분이 지방과 수분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운동도 놓고 입이 터진 채로 살다 보니 23년 즈음에는 본래 체중에서 15kg 이상 늘어나 있었습니다. 심지어 대부분의 체중이 뱃살에 집중된 정석적인 E.T 체형이 완성되어 있었지요. 스스로는 별다른 문제의식이나 자각 없이 살던 도중 다슈니가 심각하게 제 배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나온 것도 나온 건데, 너무 딱딱하다며 말이죠. 단순한 뱃살을 넘어 내장지방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원래 복압이 높고 복근이 탄탄해서 그런 것이라며 얼버무렸지만, 이후로 다슈니의 걱정 어린 시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죠.

애초에 적게 먹으면 될 일일 텐데 이미 돼지세포에게 뇌까지 잠식당한 것이었을까요. 저는 먹는 건 줄이기 싫으니 매일 달리기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마침 4월의 훈풍이 세상을 녹이는 계절이었으니 시기도 좋았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께서도 매일 달리기를 하시는 걸 보면. 매일 뛰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제 가슴을 부풀게 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달려보니 몸이 제 맘 같지 않았습니다. 몸뚱이가 무거워져서인지, 늙어서인지 몇 분 뛰지도 않았는데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옆구리는 누가 쥐어짜는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침을 삼키면 목 뒤로 피 맛이 나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습니다. 그렇게 첫날에 이 악물고 20여 분을 뛰었지요. 3km 정도를 뛰었는데 느낌은 42.195km 완주한 마라토너처럼 헐떡거리며 쓰러졌습니다(42.195km를 뛰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어거지로 매일매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때는 하루 쉬더라도, 거의 매일 뛰었습니다. 3개월 정도를 말이죠. 체중은 7kg 정도 빠졌고 뱃살은 조금 말랑말랑해졌답니다. 달리기 만만세다 싶겠지만, 뻣뻣한 육체의 고질병인 부상이 역시나 따라오고야 말았지요. 장경인대 부상으로 한동안 휴식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적당히를 모르는 다슈니에게 배운 걸까요? 하하.


라고 핑계를 대며 눈치를 보는 김쥬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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