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다슈니
2005년 선유도에서의 그날. 기억나는 듯, 또 안 나는 듯한 묘한 느낌이 있어요. 뭔가 조마조마했고, 뭔가 일이 있었고,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까지는 확실히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 모든 것이 마치 지난밤 꿈처럼 흐릿해서 실제인지 상상인지조차 가물가물해요. 그래도 한 가지는 아주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안 맞아서 정말 다행이었다는 것!
만약 정말로 그 남자가 호돌이를 때리려는 상황이 왔다면? 저는 아마 크고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도와주세요!” 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구경꾼의 힘으로 제압하려 했을 거예요. 그랬다면 지금도 분명히 번쩍 기억할, 또 하나의 역사가 쓰였겠죠?
호돌이의 선유도 이야기를 읽다 보니 저는 그보다 한 해 전, 2004년 버스 환승 사건이 먼저 떠올랐어요. 호돌이도 잘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그해는 서울에 환승 시스템이 막 도입되던 무렵이었지요.
수업을 다 듣고 함께 버스를 탔는데 기사님이 갑자기 “남자분은 카드 안 찍으셨어요!” 하고 외치셨고, 우리 둘은 동시에 침묵 + 경직 + 동공 확장 상태로 얼어붙었습니다. 호돌이는 침착하게 “찍었습니다”라고 설명했지만 기사님은 고래고래, 거의 전쟁 선언급으로 소리를 지르며 도둑 취급을 했어요. 다시 설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기사님의 요청대로 카드를 다시 태그해 하차 처리 되어버렸지요.
그 뒤의 순간을 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화가 난 호돌이의 얼굴.
처음 보는 표정이었고, 지금까지도 보기 드문 표정이었지요. 그래서 더 무서웠어요. 혹여 싸움이라도 날까 봐 저는 다음 정거장에서 후다닥 내리자고 했고, 우리는 그렇게 얼떨결에 버스에서 내려 버렸어요. 그리고 말했죠.
“환승할인 안 되니까, 우리 걸어서 가자!”
말처럼 정말로 걸었답니다. 사천교를 지나, 신촌과 홍대입구를 지나, 양화대교를 건너, 당산역까지. 날이 덥지도 춥지도 않은, 1년 중 며칠 안 된다는 바로 그 날씨. 햇빛의 세기, 공기의 질감, 머리카락 사이로 스치는 바람까지, 다 기억나는 것만 같아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걷는 걸 좋아하게 된 순간이. 함께 보폭을 맞추며 걷는다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라는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라는 걸.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걸어왔어요. 산책길, 등산길, 여행길, 다투고 난 뒤의 침묵길, 화해한 뒤의 웃음길. 걸으면 서운함은 줄고, 대화는 늘고, 마음은 가까워지고,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앞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길을 함께 걷겠죠. 걷다가 힘들면 쉬었다가, 기분 좋으면 뛰었다가, 길을 잘못 들면 웃으면서 돌아가면서. 앞으로 함께 걷게 될 그 모든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함께 걸어서 좋은 다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