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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섬 Sep 21. 2016

#03. 물의 맛: 백수가 느끼는 작은 차이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던 첫 주만큼 물에 대한 갈망이 심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사방이 물로 채워져 머리를 담그고 꼬르륵 거릴 수 있는 수영장에서 갈증이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첫 수영강습을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서 ‘지금 모래사막에서 발버둥 치다가 나온 건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물론 사막에 가본 적은 당연히 없기에 그곳에서 발버둥 치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다만 고온 건조한 날,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이나 연병장에서 치는 발버둥이라면 나름 일가견이 있다.


  백수의 기본 생활인 와식(臥食)을 즐기던 몸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격렬한 운동을 했으니 오죽했을까. 아마 평소에 즐기는 숨쉬기 운동보다 격렬하다면 무엇이든지, 타는 듯한 갈증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이미지와 현실의 괴리 때문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수영장에서 건조함이나 갈증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고,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오히려 ‘포카리 스웨트’의 광고처럼 ‘라리라라리라라~’하는 음악과 함께 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지중해의 하얀 마을, 그리고 푸른 바다의 청량함이 떠오르면 떠올랐지. 그러나 나를 한 시간 가량 감싼 수영장의 물은 피부만 쭈글쭈글하게 만들었지 촉촉함은 선사해주지 않았다. 거기다 갈증까지 더해지니,


 내 상태는 ‘샘물 앞의 미라’ 같은 몰골이었다.


  한 달이 지난 현재에는 그때와 같이 심한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 매번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기도 하고, 여전히 킥판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햇병아리에 불과하지만, 운동 강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아니면, 어느새 요령만 늘어 설렁설렁 물 위를 떠다녀서 그런 걸지도.




  첫 수영이 끝나고 마셨던 정수기의 물맛이 기억난다. 달착지근한 기운이 입안에 은은히 감돌았고, 내 몸에 필수적인 미네랄 성분이 흡수되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이다, 허풍이 아니다. 그만큼 내 몸은 갈증으로 민감해졌고, 혀는 그 이상으로 섬세해졌다.


  덕분에 물맛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었다. 입안에 찔끔 들어오던 수영장의 수돗물과는 전혀 다른, 감칠맛 나는 정수기 물의 맛. 요즘에는 생수 소믈리에도 생겼다고 하더니.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작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차이는 소독약 냄새가 나는 수영장 물의 익숙함 덕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준이 될 수 있는 익숙함이 있어야 그것을 벗어난 차이도 있으니까.  


  수영은 물의 과잉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 과잉은 내 안에 흡수되지 않았나 보다.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익숙함이라는 편견만 만들었나 보다. 그 편견은 무사유(無思惟)를 낳고, 시야를 가리고, 미세한 차이를 지웠던 건가. 익숙함이 의아하게 생각될 때, 과잉으로부터 결핍을 느낄 때, 별거 아닌 차이들이 생겨나고, 생각은 방향을 바꾸곤 한다.


작은 차이 만세!




  취업을 준비하다 보면 과잉된 조건들이 주변에 넘쳐난다. 많은 연봉, 짧은 근무시간, 다양한 복지, 자랑할 만한 사회적 지위 등등의 사회적 잣대들. 누군가에게는 이 모두가 성취할 수 있는 조건들이고, 다른 이에게는 과잉된 바람일 수 있다. 어느 하나도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나 역시 그런 조건들을 살피면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현실을 보라던 주변인의 말이 떠오른다. 별다른 경력 없는 철학 석사, 31세 흙수저가 충족하기에는 너무 많은 바람이라고, 작지만 진짜 원하는 것, 즐길 수 있는 것찾아서 선택해야 한다고. 물론 좋은 조건들을 단순히 포기하란 말은 아니다. 그전에 내 안에 흡수되지 않는 과잉 속에서 은은한 달콤함을 풍기는 작은 차이를 발견해야 한다는 말이겠지. 또는 익숙함에 집착하기보다는 결핍을 느끼고 채우는 섬세한 백수가 되라는 말이겠지. 설마, 아무 데나 대강 취업하라는 뜻은... 에이, 아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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