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전용 수영장 분투기
수영장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등 뒤에 손이 닿지 않아 서로에게 로션을 발라주는 장면.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장면은 단순한 행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 등에 로션 발라 줄 사람.”
어느 날 탈의실에서 들려온 이 말에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볼 때마다 생경하지만 여성전용 수영장 6개월 차 익숙한 광경이었다. 한 분이 등을 내밀고, 다른 한 분이 손에 로션을 듬뿍 덜어 부드럽게 펴 바르는 모습.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이들의 표정엔 거리낌이 없었다. 서로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등을 맡기고 있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 수영장에서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서로를 챙겨준다. 누군가는 샴푸 거품을 씻어내기 어렵다며 도와달라고 하고, 누군가는 손이 닿지 않는 수영복 끈을 올려 달라고 부탁한다. 한 사람이 허리를 숙이면 다른 한 사람이 허리를 펴고 손을 뻗는다. 서로를 돕는 과정에서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계산도, 대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필요하니까,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래야 하니까.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엄마는 욕조에서 나를 씻기며 내 등을 정성스럽게 닦아주곤 했다. 그러다 내가 조금 더 자라자 "이제 혼자 할 수 있지?"라며 등을 돌려주셨다. 나는 그게 어른이 된다는 과정이라 생각했고, 혼자서도 씩씩하게 씻어낼 수 있음에 뿌듯해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다시금 등을 맡기는 이들을 보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점점 남에게 등을 맡기는 일을 불편해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색해지고, 스스로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점점 고립된다. 하지만 삶의 어느 순간이 되면 다시금 손을 내밀어야 할 때가 온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혼자 할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때, 내 곁에 누군가 있어 등을 닦아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따뜻한 일이 있을까?
그들의 모습에서 배운 건 단순한 돌봄의 가치가 아니다. 나이를 먹어도, 삶의 경험이 쌓여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 혼자 서 있는 것보다 함께 기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삶이라는 것.
나는 아직 등을 맡길 용기가 없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등을 내밀며 “나 등이 간지러운데 좀 발라줄래?”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누군가 내게 등을 맡긴다면,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수영장에서는 매일같이 같은 일이 반복된다. 한 사람이 로션을 들고, 다른 한 사람이 등을 내민다. 그 속에는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온기가 스며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온기를 배우고 있다.